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기 속 대한제국 멸망사, 경술국치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일기를 읽다가 경술국치 전 며칠간을 살펴봤다. 온갖 야설에는 황제의 뜻이 아니었다는 둥의 이야기가 있지만, 나라의 멸망 앞에서 고종과 순종은 무사태평했다. 데라우치조차도 한 나라의 몰락에 "아아"라 했으나, 두 명의 암군은 평온 무사하게 자기 나라의 멸망을 지켜봤다. 또한 이완용 등 악질 친일파가 끝까지 협상에서 놓치 않았던 것은 국호와 "왕호"였다. 즉 이 병합의 주역들은 나라에는 역적이었지만 황실에겐 충신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왕가가 친일파들과 함께 쿵짝쿵짝했던 까닭을 보여준다. 이들 덕분에 황실 가족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황실에 편입되어 왕공족으로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거나, 또 순종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1910년 8월) 16일 (화) 맑음
오늘 아침 9시 이 총리(이완용)가 저택에 방문하여 우리집 수해를 위문했다. 오늘 처음으로 한일협약에 대해 대략적인 논의를 하고 각서를 전달했다. 다소 이견이 있어 다시 살피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고쿠부(国分象太郎) 참여관이 통역을 맡았다. 밤 9시에 조중응 씨가 왔다. 이 수상의 뜻을 받아 국호 및 왕호에 대해 논의하고 떠났다. 고쿠부가 동행했다. 일반적인 상황은 평온하다.
17일 맑음
종일 저택에 머무름. 송병준이 내일 서울에 도착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스기야마가 보낸 전신에 답신했다. 어제부터의 담판에서 국호 및 왕호에 관한 건이 동의되면 조약 체결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 저녁 8시에 고쿠부와 이총리가 왔다. 앞의 두 건이 합의되면 이어 진행하겠다는 결심을 이총리가 했다. 이에 나도 이 두 건을 책임지고 수용할 것임을 승낙하고 그의 결심을 촉구했다. 다시 고쿠부를 통해 전달하고 조약안도 제시했다. 그가 여기에 동의하고 내일 각의에서 이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18일 맑음
아침 저녁으로 냉기를 느낀다. 오늘은 아침부터 조중응 씨가 내각에서 다른 각료들과 대담하느라 오후 4시까지도 퇴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총리는 각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종일 조약서를 다듬게 했다. 가쓰라 총리가 어제 귀경해 오늘 오후 국호 및 왕호에 대해 이견이 없다는 회신이 왔다. 송병준이 오늘 오후에 서울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오늘부터 나는 현 내각이 결의를 하고 조인에 대한 논의를 끝마치길 기다릴 뿐이다. 도쿄의 이시구로 씨가 편지를 보내 노기(乃木希典) 대장의 상태를 보고했다. 기쿠치 의원은 편지로 소네(曾禰荒助) 씨의 병세를 알렸다.
19일 무사
내각과의 (의견) 왕래 및 기타 사무 처리에 바쁘다. 내각과의 소통은 항상 고쿠부 참여관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 매우 신뢰할 만하다. 오늘 아침 아들 히사이치(寺內壽一) 부부가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출발했다.
20일 무사
어제와 동일. 내일 일요일 조인할 예정이다. 상황이 복잡해 무척 이해하기 어렵다. 도쿄와의 소통은 거의 정리되었다.
21일 (일) 종일 흐리고 비가 자주 내림
정부의 상황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는데 궁내대신(민병석)과 시종원경(윤덕영)이 특히 애매모호하다. 이에 고쿠부가 나서서 그들을 설득했다. 대체로 정리되었다. 저녁에 고쿠부가 송(병준)을 방문했다. 이완용과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내일은 들어가서 일을 마치겠다는 의욕이 자못 고양되었다고 한다.
22일 맑음
오늘 아침 10시에 궁내대신과 시종원경을 초청하여 협약의 부득이한 사정 및 궁중의 처리 방안을 충고했다. 두 사람이 승낙하고 떠났다.
12시에 고쿠부 참여관으로부터 궁중의 일이 문제 없이 모두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는 내부 보고를 받았다. 같은 시각 태황제 시종 서병협徐丙協을 보내 위로를 전했다.
오후 4시 한국합병조약을 통감저택에서 조인했다. 참석한 자는 이완용, 조중응, 부통감(야마가타 이사부로) 및 나였다. 그리고 오는 29일 발표하기로 결정하고 대강을 통지했다. 합병 문제는 이처럼 쉽게 조인되었다. 아아.
23일 흐림 또는 비
오늘은 마치 비가 그친 후 같다. 세상이 매우 평온하다. 오전에 통감부에 이르러 차관 등에게 어제의 정황을 알리고 앞으로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저녁에 아카시 경찰총장이 왔다. 우리 신문을 제외하면 세상 모두 매우 조용하다.
오전 고미야(小宮) 차관이 왔다. 황제(순종)와 태황제(고종) 모두 평온무사하다고 한다.
24일 맑음
그저께 조약 체결 이래 매우 평온하다.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받은 보고에 따르면 조선인의 동요가 다소 있다고 한다. 창덕궁(순종) 및 태황제, 내각원 모두 특이점 없다.
25일 맑음, 가끔 흐리고 비가 내림
전일과 다른 점 없음. 오후 4시 반부터 여기 재판소 및 사법부의 고위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소견을 말하고 또한 앞으로의 주의를 환기시킨 뒤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