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죽음을 지켜본 의사, 그리고 의친왕_고종독살?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사망했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독살설이 1919년 이래로 이어지고 있다. 매일신보에는 고종의 최후를 지켜본 의사들의 진술이 있다.
태왕전하 훙거 환후 경과
전하께서는 며칠간 불면증에 시달리시더니 21일 아침 1시 45분 주무시던(暇寐睡眠) 중 돌연 우측 반신에 경련이 일어나고 이어 좌측까지 이어져 약 3분간 완화(緩解)되신 바 즉시 진료하니 오른쪽으로 누워 주무시는 위치에서 맥박은 115로 가지런해 조금도 이상이 없었고 체온도 36도 5분을 보여 정상 범위를 넘지 않았다. 동공은 모두 간신히 축소되어 반응에도 다시 이상이 있지 않았으며 동공은 좌우가 모두 간신히 축소가 되어 반응에 다시 이상이 있지 않았고 또 지각계에는 하등 이상(變調)을 보이지 않았으나 건반사는 소실되고 혀는 건조하여 때때로 갈증(口渴)을 느끼시기에 이상의 여러 증상에 근거해 좌측 뇌출혈 증상으로 진단하고 전심전력으로 치료한 바, 오전 2시 15분에 전과 같은 발작이 약 3분간 있다가 완화되더라. 이때까지는 발작 중이라도 의식이 명료하시고 단 언어 장애를 보였을 뿐이더니 이후 6시 35분까지 크고 작은 간대성 경련(근육 수축)이 10회나 일어나기 이르고 발작은 점차 격심해져 전반적으로 심해지고 더불어 의식을 상실하고 반사계는 거의 반응이 없으시고 쌕쌕 숨소리를 띠고 코소리를 동반하며 맥박도 연약, 부정하시고 체온도 상승하여 37도 8분을 보이며 중태에 빠지셨다.
다이쇼8년(1919년) 1월 21일
이왕직 전의典醫 김형배金瀅培, 촉탁의囑託醫 가미오카 잇코(神岡一亨), 안상호安尙浩
(매일신보 1919.1.23.-현대어로 풀어 씀)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의사들도 모두 일당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이 가운데 안상호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 당시 말로 “일선동체의 가정”으로 보도된 바 있기에 혐의를 더한다. 안상호는 일찍이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개업, 이왕가 전속 의사로 활동했다. 그랬기에 급히 달려와 고종의 마지막도 볼 수 있었다.
이강공 전하 족부 질환으로 당분간 하코네箱根에서 체재
목하 도쿄 부근 하코네에서 체재 중이신 이강공 전하께서는 19일에 떠나시어 환가하실 예정이셨으나 13일에 이르러 20일에 떠나신다는 전보가 궁저宮邸에 도착하였을 뿐 아니라 14일에는 족부가 불편(未寧)하여 의사 안상호씨를 급히 보내시라는 하명이 있었다 함으로 전하 환가는 당분간 연기되실 모양이며 환후는 대단치 않으시다고 한다.
(중외일보 1927.6.15.)
안상호를 가장 신뢰했던 이는 전 의친왕 이강이다. 이강은 안상호를 일본에서 만나 귀국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후 안상호가 돌아왔을 때 이왕직과 연결한 것도 이강이다. 이강은 고종, 그리고 순종이 승하한 후에도 아프면 안상호를 불렀다. 만일 이강이 고종 독살설을 믿었다면 안상호를 찾았을까?
의친왕 이강이 공범이 아니고서야 안상호를 찾았겠는가? 이 허황된 이 질문처럼 고종 독살설은 그저 “설”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