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의친왕, 뉴욕에서 "흥청망청"

자불어 2024. 12. 1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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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의화군, 훗날 의친왕 이강이 미국에서 유학생과 한국 독립의 뜻을 함께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강의 실제 생활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음 기사 역시 이강의 미국 생활을 잘 보여준다. 
아래는 버지니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간지 Richmond Dispatch, January 22, 1902.에 실린 글이다. (정병준 선생님 논문의 각주를 보고 원문을 확인, 번역해 싣는다.) 의친왕이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하는 분은 필독하시기 바란다. 1902년이 대한제국에게 어떤 기간이었는지 생각하면 더 기가 막힌다. 


왕자, "흥청망청"

뉴욕 관광에 3만불을,  은행에 고소당한 한국 국왕의 둘째 아들   
(뉴욕 월드의 워싱턴 특파원)

한국 국왕의 차남인 의화(Euiwha) 왕자는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운 대학시절의 추억”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버지니아주 로어노크 칼리지에서 수학하던 중 뉴욕 브로드웨이 100번지에 사무소를 둔 은행인 울프브러더스(Wolfe Brothers & Co)가 발부한 대법원 소환장에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 공사관으로 들어갔다. 울프 형제 회사는 왕자가 빌린 3만 달러의 채무를 변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의화 왕자는 채무를 솔직히 인정하며, 학생들의 오랜 변명인 “아버지께 청구하세요”라고 답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한국 국왕이 이 채무를 곧 갚을 것으로 예상되며, 해당 금액은 약속어음으로 보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화 왕자는 겨우 21세를 넘긴 젊은 나이로 이미 미국에 온 지 3년째 유학 중이다.
의화 왕자는 왕실로부터 연간 4,000달러의 생활비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가 연간 8,000달러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3만 달러를 다 써버렸는지는 한국 공사관의 관계자들과 로어노크 칼리지의 친구들에게 흥미로운 의문으로 남아 있다.
공사관에서 그에게 “그렇게 큰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질문했다. 통역관이 그 질문을 왕자에게 전하자, 왕자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한국어로 대답했다. 통역관은 심각한 어조로 “왕자께서 뉴욕에서 놀러다니는 데 돈을 다 써버렸다고 말했습니다”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의화 왕자는 뉴욕과 워싱턴을 자주 방문했으며, 그가 즐긴 유흥의 방식은 연간 4,000달러의 수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의화 왕자는 현재 한국 공사관을 통해 빚을 갚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는 한국 국왕이 곧 그에게 필요한 금액을 보내줄 것이라 믿고 있다. 의화 왕자는 미국에 어떤 재산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에 있는 그의 재산은 최소 1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미국에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의 재산을 압류하기 위해서는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3년 전 미국으로 오던 길에, 요코하마에서 한국 반란군에 의해 지연된 일이 있었다. 반란군은 그를 왕위에 앉히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왕자는 탈출해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그의 어머니와 두 명의 형제는 왕비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왕비는 그를 죽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왕자는 암살 위협을 피하기 위해 항상 방어복을 입고 다닌다고 한다. 

PRINCE "BLEW IN"
$30,000 TO SEE GOTHAM

Second Son of the King of Korea
Sued by a Banking Firm.
(Washington Correspondent of New York World.)

Prince Euiwha, second son of the King of Korea, Heui Yi, can sing "Dear Old College Days," with the best of them. He has arrived at the Korean legation from Roanoke College, Va., where his studies were interrupted by a Supreme Court summons obtained by Wolfe Brothers & Co., bankers, with New York offices at No. 100 Broadway, who allege that the Prince owes them $30,000 borrowed money.
Prince Euiwha frankly admits the indebtedness, and makes the time-honored student reply. "Call on Dad." It is expected that the King of Korea will promptly make good the debt, which is said to be secured by a promissory note. No defence will be made against the proceedings. Prince Euiwha is little more than 21 years old, and has already been in this country three years seeking an American education.
Prince Euiwha admits to a $4,000 yearly allowance from his royal father. Some say it is $8,000 a year. Just how he managed to spend the $30,000 in question is a matter which is interesting attaches of the Korean legation and his friends at Roanoke College.
“What did you want with such a large sum of money?” he is said to have been asked at the legation. The interpreter passed on the question to the Prince, who replied in Korean, smiling blandly.
He says that he blew it in, seeing the sights in New York,” returned the interpreter, gravely.
It appears that Prince Euiwha has made frequent visits to New York and Washington, and the manner of his entertainment is said to have been scarcely within keeping of a $4,000 yearly income.
Prince Euiwha is arranging to pay the money through the Korean legation here, as he believes the King of Korea will promptly remit him the amount. Prince Euiwha is not believed to hold any property in this country, but his possessions in Korea are reported to be worth at least $1,000,000. Should judgment be obtained against him in this country it will be necessary to carry the case into the courts of Korea in order to attach his property.
While on his way to this country three years ago Prince Euiwha was intercepted at Yokohama by Korean rebels, who plotted to place him on the throne. He spoiled their plans by escaping. His mother and two of his brothers were murdered by the Queen, who had also planned to kill him. She died before she could accomplish her purpose. The Prince is said to wear constantly a suit of mail as a precaution against assassination.
 

PRINCE "BLEW IN" $30,000 TO SEE GOTHAM Richmond Dispatch, January 2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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