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십칠사상각 (2)
일상 역사
칠세七世 구당서舊唐書 본기本紀에 “고조高祖는 양凉(서량) 무소왕武昭王 고暠의 7대손이다. 고는 흠歆을 낳고 흠은 중이重耳를 낳았다. 중이는 희熙를 낳고 희는 천석天錫을 낳았다. 황조皇祖의 휘는 호虎고 황고皇考의 휘는 병昞이다.”라고 했다. 신당서新唐書 본기에서는 “칠세조는 고暠이며 고는 흠을 낳았다.”고 했다. 천석 이하 바로 호를 낳았다고 하고 호는 병을 낳고 병은 고조를 낳았다 했으나 황조, 황고라고는 하지 않았다. 유구劉昫는 당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신당서 본기에선 다시 천석을 '천사天賜'로 고쳤다. 칠대조이든 칠세손이든 모두 자신에서부터 세는 것으로 순서대로 추산하면 고부터 병까지, 역으로 추산하면 병부터 고까지가 칠세다. *참고 이호李暠 – 이흠李歆 – 이중이李重耳 – 이희李熙 – 이천석李天錫..
고조와 고종의 자만 쓰다. 高祖高宗獨書字 구당서舊唐書 본기는 황제의 자字를 모두 기록하지 않았고, 신당서新唐書는 고조高祖와 고종高宗 두 황제의 자만 기록했다. 단, 스무 명의 황제 가운데 이 두 명의 황제만이 자가 있었을까, 돌아보면 그런 건 아니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사마씨(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씨(반고班固의 한서漢書)는 한의 본기에서 고제高帝의 자를 쓰고 휘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휘와 자 모두 쓰지 않았다. 사마씨와 반씨는 한의 신하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역사서는 모두 휘와 자를 썼다. 구당서에서 자를 쓰지 않은 것은 고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당서에서 두 황제의 자만 쓴 것은 그 기준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舊紀各帝皆無字, 而新書於高祖・高宗二帝獨書其字, 但二十帝之中只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