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23

이토 히로부미에게 신세 한탄한 의친왕 이강

러일전쟁의 승리로 주도권을 잡은 일본은 대한제국에 을사조약을 강제하고, 통감부를 설치해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경제 정책을 주관한다. 그리고 초대 통감으로 이등박문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이 부임한다. 통감은 대한제국 각부 대신을 소집해 시정 관련 회의를 개최했는데, 현재 회의록이 전한다. 1906년 7월 12일 오전 10시 반에 제8회 회의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는 이등박문 외 찬정대신 박제순, 대부대신 이지용, 탁지부대신 민영기, 군부대신 이근택, 법부대신 이하영,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통역은 국분상태랑國分象太郞(고쿠부 쇼타로) 등이었다. 이날 열린 회의 안건 가운데 하나가 의친왕 전하였다. 왜? 의병 지원이나 반일 사상 때문이었을까? 그럼 회의록을 보자. 이토 통감: 의친왕義親王이..

이왕가 사람들 2025.05.17

우국지사 매천 황현, 의친왕 이강을 기록하다

우국지사 황현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점당하자 절명시를 남기고 자살했다. 그는 "나라가 500년 간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할 때 죽지 않는 선비가 없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독약을 마셨다. 광복 후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했다. 그는 1864년부터 1910년까지 편년체 역사서 매천야록을 남겼다. 매천야록은 지방 사림에 눈에 비친 조선, 대한제국 멸망사다. 물론 개인이 편찬한 역사서로 정보의 제한, 또는 사인의 감정이 섞였음은 물론이다. 여기에는 고종, 명성황후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최근 의친왕을 숭모하는 단체가 나타나 여러 독립지사 후손을 찾아다니며 의친왕의 업적을 허위 분식하고 있다. 그들의 나쁜 점 중 하나는 의친왕의 몹쓸 행동이나 일제에 협력했던 모습을 담은 기록은 ..

이왕가 사람들 2025.05.17

의친왕, 타인의 삶을 도적질하다.

의친왕을 띄우기 위해 독립운동가들 공적을 가로채다니! [박종인 기자의 ‘흔적’]의친왕을 띄우기 위해 독립운동가들 공적을 가로채다니 박종인 기자의 흔적 아무튼, 주말 후손과 학계, 지자체가 조작한 의친왕의 실체www.chosun.com위의 기사를 반드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역사"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좋은 글입니다. 누가 죽은 의친왕을 도둑으로 만들었을까? 그건 바로 후손이다. 문중, 그리고 자칭 역사학자가 결탁한 거짓놀음. 여기에 세종특별자치시 최민호 시장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국가예산 국민세금 털어넣고 국가보훈부 차관까지 초대해 대미를 장식. 그리고 세종시 언론과 문화운동가들 피쳐링하며 자신들의 수준을 유감 없이 보여준 부강면 독립운동 사적지화 계획. 아직 공화국 시민이 되지 못하고 전근대 ..

이왕가 사람들 2025.05.11

덕혜옹주 장례식, 상주는 누구인가?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황녀”라고 하지만 실은 일제강점기 이태왕의 서녀로 옹주가 맞는 표현이다. 쓰시마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와 혼인했다. 결혼 전부터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1932년 딸 소 마사에를 낳은 뒤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정도였다. 신적 강하 이후 영친왕이 생계를 지원하고 또 이혼도 시켰다. 1956년 딸 소 마사에가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산에서 실종되었다. 박정희 정부 이후 1962년 귀국, 낙선재에 들러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1967년 낙선재 내 수강재에 기거하다 1989년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관련 소설, 드라마가 있으나 허구가 심해 대체역사로 봄이 타당하다. 위키피디아 덕혜옹주 항목 중 “영결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4월..

이왕가 사람들 2025.05.10

대한제국 태자태사 문충공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일본 이상 당혹스러워했던 건 대한제국 조정이었다. 어떤 자들은 일말의 근거도 없이 안중근이 고종의 밀명을 받았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펴고 있으나 이는 대한제국에 대한 환상과 조상 현창에 눈먼 이들의 소설에 불과하다.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황태자(영친왕)의 스승이 되어 달라며 태자태사의 벼슬을 내렸다. 즉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의 대신이기도 했다. (그 전에 고종은 부디 한국에 남아달라며 간청하기도 했다.) 순종은 태자태사의 죽음에 조서를 내렸다. “태자 태사(太子太師) 이등박문(伊藤博文)은 영령(英靈)의 기질을 타고나 광제(匡濟)의 계략을 갖추고서 시운(時運)을 만회하고 문명(文明)을 발전시키려 현로(賢勞)를 꺼리지 않았고 자신의 훌륭함은 돌보지 않은 채 우뚝이 동양(東..

이왕가 사람들 2025.03.02

을사늑약 폐기를 요구하는 신하들에게 집에나 가라던 고종 황제

*고종이 "을사조약의 폐기에 일도 노력하지 않았다"는 저의 착오가 있어 원고를 수정해 게재합니다. 고종 또는 순종을 미화하는 사람들은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믿을 수 없는 자료로 치부한다. 그리고 규장각에는 막대한 1차 사료가 있다며 그것을 번역하면 고종과 순종에 대한 재조명이라도 벌어질 듯 내심 기대한다. 그 1차 사료 가운데 하나가 승정원일기다. 나무위키 승정원일기 항목에는 그런 희망이 그대로 담겨있다.“고종 순종실록은 일제가 만들어서 역사왜곡이 상당히 심하기에 일기가 주요 사료가 되고 실록이 보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을사늑약 체결 열흘 뒤인 광무9년(1905) 11월 27일,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조병세趙秉世가 상소를 올린다.  신들이 근심과 울분에 사로잡혀 망령되게 저희들의 생각을 아뢰고 모여..

이왕가 사람들 2024.12.24

적십자사 총재 의친왕, 이토 히로부미를 도와 의료시설을 합병하다.

#세종시와대한황실의독립운동기록과시대의증언 비판 02. 적십자사 사장 의친왕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는 의친왕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포럼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역사왜곡으로 점철된 “집안 띄어주기”에 불과했다. 그날 허위 사실을 하나씩 잡아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적십자사 사장" 의친왕 편이다. 의친왕기념사업회장 이준은 자료집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06년 7월 12일 의친왕은 고종황제로부터 칙명을 받고 대한적십자사 재에 취임하여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서양식 의료체제를 한국에 적극 도입하였다. 대한적십자회 역시 해외에서 비밀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중요한 단체가 된다.”(이준, 황실 독립운동의 중심 사동궁과 의친왕의 항일운동,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이왕가 사람들 2024.11.21

왕실 후손의 부동산 사기 사건 전말(1953)

한국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53년, 일제강점기 공가로 호의호식했던 의친왕 이강 씨의 육남 이곤 씨가 부동산 사기 혐의로 검거되었다. 아래는 그 뉴스다. (평화신문 1953년 6월 14일)그는 왜 사기를 했나. 왕족 이곤씨의 생활 기록8.15.라는 역사적인 전환기에 부닥쳐 궁궐을 쫓겨나와 생활고라는 무자비한 질곡 속에 허덕이고 있는 이왕 후예들의 신산한 몰락 과정을 말하는 호개의 자료로서 소위 구왕궁을 팔아먹었다는 왕족 이강공의 육남 이곤(34세) 씨의 오늘에 이른 생활 기록을 소개해 보자. 이곤(일명 이명길)씨는 4253년(1920) 11월 4일 이강 공의 육남으로서 모친 김씨(이강공의 삼첩三妾)의 몸에서 출생한 후 8세 때에 일본에 도항하여 동경 입회소학교立會小學校를 졸업하고 동경 사립 입정중..

이왕가 사람들 2024.10.26

토사구팽 대마왕 고종, 헤이그 밀사를 배신하다

고종은 어떤 군주인가? 매스미디어에서는 얼치기 작가, PD들이 고종을 미화하고, 또 모 전직 대학 교수는 종교를 믿듯 고종을 바라보며 온갖 상상력과 자기 복제로 각주 달며 찬양고무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많은 사람은 고종을 근대군주, 혹은 시대의 한계로 주저앉은 애석한 군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종의 치세를 돌아보면 그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강력한 군권으로 제 멋대로 하다가 망국의 길을 연 군주이며, 근대의 물산을 좋아하면서도 전근대의 군주권을 휘두르고자 했던 자다. 고종의 진면목은 그가 신하를 대할 때 드러났으니, 이 방면에서만큼은 사악하리만큼 악독했다. 자신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하를 헌 신짝 버리듯 했다. 그 일례가 고종 독살 미수 사건이다. 고종은 이상한 냄새에 마시진 않았으나 별생각 없..

이왕가 사람들 2024.10.01

덕수궁 태황제, 통감부로 행차해 이토 히로부미를 조문하다

우리는 으레 희망을 담아 역사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랬으면 좋았을 걸... 그런데 그 희망을 오래 품다 보면 마치 사실인 양 생각하며 되려 진실은 보지 않으려 한다. 역사 왜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제국 황실가문이 그 대표적 예 중 하나다. 인현왕후가 출궁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리지만 정작 당신의 조상은 보릿고개를 걱정했을 거다. 집 한 채 없는 사람이 망한 재벌을 걱정하는 게 우리네 인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스미디어가 근거 하나 없이 고종이나 민비, 의친왕, 덕혜옹주의 독립운동을 그럴싸하게 꾸며대면 또 이를 본 이들은 그것이 마치 진실인 양, 그리고 몰랐던 역사를 발견한 듯 달려든다. 가끔은 이런 경우가 국제적 개망신으로 치닫게 되기도 하니, 전 서울대학교 교수의 인조이재팬 쪽팔림 사..

이왕가 사람들 202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