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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공비(전 의친왕비)의 편지

의친왕비 김덕수, 의친왕 집안에서 인간적으로 가장(어쩌면 유일하게)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매천 황현도 의친왕의 됨됨이에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의친왕비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의친왕이 주색을 일삼아도, 그녀는 품위를 잃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몇 푼 안 되는 국비보조금을 배다른, 그리고 비공식 자녀들에게까지 나눠 주며 늘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대개의 자식들은 생계를 일구기보다 의친왕비만 바라봐 의친왕비가 무척 힘들어 했다고) 그런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의친왕의 유품을 보전하여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기증해 공공의 재산이 되도록 했다. 의친왕비는 자녀들에 의해 유물이 분산될 것을 우려했으며, 기증할 때 말썽이 날까도 염려되어 어떤 자녀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고 한다.(이곤이 기증..

이왕가 사람들 2026.03.29

대한제국 군복? 영친왕 아동복!

대한제국 군복 가운데 영친왕 군복으로 전하는 것이 있다. 빨간색 상의(대례의)와 파란색 바지다. 혹자는 이 복장이 대한제국 친왕의 군복이라며 복원해 착용하곤 한다. 또한 대한제국의 다른 군복과 달리 흑색이 아닌 이유는 황족이기 때문에 차이를 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종, 순종 등 황제나 다른 황족에게서도 이런 색상의 군복을 착용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이하 이것에 대해 고증한다. 영친왕의 이 군복은 여러 학자가 지적하듯 1897년 5월 15일 반포한 육군장졸복장제식陸軍將卒服裝製式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 옷에 해당하는 예복 규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옷감은 검은 벨벳으로 하고, 단추는 검은 실로 둥글게 짠 것으로 하며, 매듭 끝은 무궁화 모양으로 한다. 옷깃과 소매 끝은 붉은 벨벳으로 두르고, ..

이왕가 사람들 2026.03.28

김가진이 의친왕에게 주었다는 글씨-신뢰할 수 없는 그들의 증언

太乙峰前處士家 丹爐藥竈舊生涯 江城戀酒不歸去 老卻碧桃無限花 태을봉 앞 처사의 집 단약을 제조했던 지난 삶 강가 도시의 술이 그리워 돌아가지 못하나늙어가는 푸른 복숭아는 끊임없이 꽃을 피우네. 光武九年秋日書于白雲山莊 漢城 金嘉鎭 광무9년(1905) 가을날 백운산장에서 쓰다. 한성 김가진인장 (좌상단) 羣賢畢至少長咸集 여러 현자가 모두 도착하자 젊은이와 노인 모두 모였다. *출전: 왕희지, 난정서 (우하단) (백문방인) 金嘉鎭印, (주문방인) 東農 의친왕기념사업회 소장 김가진 작품.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도, 전시도록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기에, 여기 해석을 더한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김가진이 이 글씨를 써서 의친왕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신뢰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이왕가 사람들 2026.03.19

일제협력자 의친왕 이강의 실체

망명 실패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그리고 의친왕 후손들의 가짜 역사 만들기에 속아 많은 이들이 의친왕을 독립운동가 또는 적어도 비운의 왕족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각은 뿌리 깊었다. 그는 축첩만큼이나 일본 생활을 즐겼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황실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며 이토 히로부미에게 하소연을 했으며, 국권 피탈 직후에는 한국과 일본이 칠과 아교가 되었다며 송축했다. 데라우치에게는 일본행을 막지 말라 호소했고, 망명 기도 후 잡혀와서도 두려움 속에 일본행을 제안했던 것 역시 그였다. (일제가 아니었다.) 그랬던 까닭에 해방 직후 자신의 저택 사동궁을 빼앗길까 두려워 잽싸게 매각했던 그였다. 여전히 의친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신조 미치히코..

이왕가 사람들 2026.03.18

당감唐鑑 01. 당 고조의 창업

당감은 송나라 때 범조우가 지은 당나라의 역사책이다. 범조우는 자치통감 편찬에 참여해 일부를 작성했다. 편찬 작업이 마무리 된뒤, 그는 당나라 역사를 따로 떼어 본인의 역사관을 담아 당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감은 "당이라는 거울"을 의미한다. 즉 당나라의 역사로 비추어 본다는 말이다. 체재는 당나라의 주요 사건을 기술하고 그 아래 본인의 생각을 피력했다. 아래는 본문의 첫 글이다. 수(隋) 대업(大業) 13년, 고조(高祖)는 태원(太原) 유수(留守)로 있으면서 진양궁감(晉陽宮監)을 겸하고 있었다. 이때 양제(煬帝)가 남쪽으로 강도(江都)에 행차하자, 천하에 도적이 봉기하였다. 고조의 아들 세민(世民, 훗날 당 태종)은 수나라가 반드시 멸망할 것을 알고 은밀히 호걸들과 결탁하여 거사를 도모하였다. 그러..

오늘의 고전 2026.03.18

의친왕 미화를 위해 이승만에게 허물을 덧씌우다.

조선이 고려를 멸망시킬 때, 우왕, 창왕, 공양왕을 어떻게 했는가? 같은 민족이어도 그리 했건만, 일제는 그리하지 않았다. 일제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고종 이하 구 왕실을 없애는 것보다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조선통치에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한제국 옛 황족들은 왕공족으로 거듭났다. 어느 누구 하나 왕위, 공위를 거부한 이는 없었다. 모두 은사공채를 한 아름씩 안고 일제에 협력했다. 의친왕은 83만원을 받았다.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이 15만원을 받았으니, 5배도 넘게 받은 셈이다. 대한제국 시대에도 못 누렸던 호사였다.(대한제국 정부는 의친왕에게 궁을 내주지 않았다. 이미 흥청망청 주색잡기로 과도한 채무를 졌던 지라 내줬다가는 한일 양국의 채권자들에게 넘어갈 판이었기 때문이다.)의친왕 후..

이왕가 사람들 2026.03.15

조선통치비화 - 의친왕 탈출 사건의 진상(5)

이하 글은 (조선행정편찬총국, 1937)에 실린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던 시기 식민통치 각 방면에 있던 사람들의 회고담을 실은 것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다다시는 책을 출간하기 1년 전 2.26. 사건 시 살해 당한 까닭에 정무총감이었던 미즈로 렌타로가 중심이 되었다. 총 14장의 주제로 되어 있으며, 이강공 사건은 10장에 해당한다. 당시 이강공의 신문을 맡았던 지바 료(千葉 了)의 증언으로 신뢰성이 높다. 일제협력자, 주색잡기로 평생을 일관했던 이강(전 의친왕) 옹호자들은 애당 초 일본인이 발간한 자료는 거짓으로 치부한다. 당시 일본 정계에서는 의친왕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도 공공연히 있었고, 특히 심문을 담당했던 지바 료는 이강을 의심하..

이왕가 사람들 2026.03.03

조선통치비화 - 의친왕 탈출 사건의 진상(4)

이하 글은 (조선행정편찬총국, 1937)에 실린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던 시기 식민통치 각 방면에 있던 사람들의 회고담을 실은 것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다다시는 책을 출간하기 1년 전 2.26. 사건 시 살해 당한 까닭에 정무총감이었던 미즈로 렌타로가 중심이 되었다. 총 14장의 주제로 되어 있으며, 이강공 사건은 10장에 해당한다. 당시 이강공의 신문을 맡았던 지바 료(千葉 了)의 증언으로 신뢰성이 높다. 일제협력자, 주색잡기로 평생을 일관했던 이강(전 의친왕) 옹호자들은 애당 초 일본인이 발간한 자료는 거짓으로 치부한다. 당시 일본 정계에서는 의친왕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도 공공연히 있었고, 특히 심문을 담당했던 지바 료는 이강을 의심하..

이왕가 사람들 2026.03.01

조선통치비화 - 의친왕 탈출 사건의 진상(3)

이하 글은 (조선행정편찬총국, 1937)에 실린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던 시기 식민통치 각 방면에 있던 사람들의 회고담을 실은 것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다다시는 책을 출간하기 1년 전 2.26. 사건 시 살해 당한 까닭에 정무총감이었던 미즈로 렌타로가 중심이 되었다. 총 14장의 주제로 되어 있으며, 이강공 사건은 10장에 해당한다. 당시 이강공의 신문을 맡았던 지바 료(千葉 了)의 증언으로 신뢰성이 높다. 일제협력자, 주색잡기로 평생을 일관했던 이강(전 의친왕) 옹호자들은 애당 초 일본인이 발간한 자료는 거짓으로 치부한다. 당시 일본 정계에서는 의친왕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도 공공연히 있었고, 특히 심문을 담당했던 지바 료는 이강을 의심..

이왕가 사람들 2026.03.01

조선통치비화 - 의친왕 탈출 사건의 진상(2)

이하 글은 (조선행정편찬총국, 1937)에 실린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던 시기 식민통치 각 방면에 있던 사람들의 회고담을 실은 것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다다시는 책을 출간하기 1년 전 2.26. 사건 시 살해 당한 까닭에 정무총감이었던 미즈로 렌타로가 중심이 되었다. 총 14장의 주제로 되어 있으며, 이강공 사건은 10장에 해당한다. 당시 이강공의 신문을 맡았던 지바 료(千葉 了)의 증언으로 신뢰성이 높다. 일제협력자, 주색잡기로 평생을 일관했던 이강(전 의친왕) 옹호자들은 애당 초 일본인이 발간한 자료는 거짓으로 치부한다. 당시 일본 정계에서는 의친왕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도 공공연히 있었고, 특히 심문을 담당했던 지바 료는 이강을 의심하..

이왕가 사람들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