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직 4

방명록에 답합니다.

수인당(의친왕 측실) 후손을 자처하는 분께서 이 블로그 망명록에 나를 식민사관에 물든, 식민지청산에 실패한 결과라며 글을 남겼다. 거기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제글에서 왜곡이 무엇인가요?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차 언급했듯 납득할 수 있음 글 내리겠습니다. 사과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퉁쳐서 식민지의 적폐란 식으로 비난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근거를 제시해주세요. 선동이요? 출처 없는 구전(?), 팩트 조작에 근거한 주장이야 말로 선동입니다. 예를 들면 1909년 거창에서 의친왕 이강이 정태균과 의병 기의를 모의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의친왕은 그 때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거든요. 또 독립지사 이강 선생의 사적을 도용해 공립협회 주필 운운 의친왕 이강의 사적인냥 포장한 건 의도된 역사 왜곡..

이왕가 사람들 2025.07.05

사이토 마코토 문서에 남은 전직 의친왕 이강 공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두 조슈번 육군출신 총독이 주도했던 무단통치는 3.1.운동이란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에 일본은 육군 대신 해군 출신을 선택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다. 사이토는 부임하던 날부터 간담을 쓸어내렸다. 사이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강우규 의사는 그에게 폭탄을 투척했으나 사살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이토는 1919년부터 1927년까지, 그리고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을 역임했다. 그는 ‘문화정치’를 표방, 유화책을 썼다.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한국어 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탄생한 것도 이때다. 1932년 총리가 되었으나 내각의 비리로 1934년 사임한다. 그리고 1936년 2.28. 사건 시 황도파 청년 장교들에 의..

이왕가 사람들 2025.07.03

이왕직 관료_박주빈

이왕직李王職에 새로 생긴 주전과장主殿課長 박주빈朴冑彬 씨 이왕직에 장시사掌侍司가 없어지며 그 대신 주전과라는 것이 생겼다. 주전과는 그동안 장시사에서 맡아서 하던 내전 제반 사무를 맡아 보게 되었으니 새로히 과장이 된 분은 이왕가에 20여 년간 봉사하던 박주빈씨다. 47세에 비로소 과장이라니 기쁘기보다는 부끄럽소 하는 박과장의 낯에는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실렸다. [사진은 20일 낮, 새 과장석에 앉은 박씨] (매일신보 1928.8.21.)대한제국 관원이력은 다음과 같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DB 참조) 본관 고령 생년월일 1882년 1월 7일 현주소 충청남도 홍주군 얼방면 효천리 학력 1888년  한문사숙漢文私塾 입학 1900년  한문漢文 휴학 1903년  3월  경성학당京城學堂 입..

이왕가 사람들 2024.07.08

이왕가 사람들 연재의 이유

얼마 전 우연히 어떤 글을 보았다. 그 글은 고종과 그 일족에 대한 비난을 "식민사관"으로 치부하며, 손톱만한 독립운동, 또는 뇌피셜 속 저항의식을 미화, 분칠하고 있었다. 후손이 조상의 어두움을 가리고 또 작은 기여를 현창으로 포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함부로 그들의 과오를, 또 역사적 사실을 "식민사관"으로 덮어버리려는 모습을 보며, 진정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참모습을 모두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1. 몇 년 전 왕실 후손 한 명이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황제 즉위식을 열었다. 황제에 옹립된 이는 고종의 손녀이자 이강 공(의친왕)의 딸 이해원이었다. 1919년 태어나 일제강점기 내내 운현궁에서 호의호식하고 또 경기여고, 게이오대학(경응의숙) 법문학부까지 졸업했으나 광복 이후 스스로 생계를 ..

이왕가 사람들 20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