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두 조슈번 육군출신 총독이 주도했던 무단통치는 3.1.운동이란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에 일본은 육군 대신 해군 출신을 선택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다. 사이토는 부임하던 날부터 간담을 쓸어내렸다. 사이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강우규 의사는 그에게 폭탄을 투척했으나 사살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이토는 1919년부터 1927년까지, 그리고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을 역임했다. 그는 ‘문화정치’를 표방, 유화책을 썼다.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한국어 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탄생한 것도 이때다. 1932년 총리가 되었으나 내각의 비리로 1934년 사임한다. 그리고 1936년 2.28. 사건 시 황도파 청년 장교들에 의해 자택에서 살해되었다. 그는 해군 근무 시절부터 총리까지 재직 기간 중 주고받은 여러 문서와 편지를 남겼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후손은 옛집, 이와테 현의 사이토 가문 본가 등에 분산보관해오다 1974년 일본국회도서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일본국회도서관은 이 문서의 목록을 만들어 공개했다. 여기에는 조선 왕공가 관련 문서, 서신도 적지 않은데, 그 안에는 이강, 즉 전직 의친왕, 이강공 관련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실물을 열람해 소개하려 하나 일단 급한대로 목록 일부를 전재한다.
(9) 이강공 전하 동정 보고(다이쇼14년(1925)도 분)
(10) 이강공 전하의 각서에 관한 건, 이왕직 차관 시노다 지사쿠
(11) 총독, 이강공 회견 시말
(12) 이강공 전하에 관한 건(이강공의 행적에 관한 의견) 제1안, 제2안
(13) 이강공가에 관한 건
(14) 이강공 각서(이강공에 대한 이왕직의 처우에 대해, 이왕직에게)
(15) 이강공 서한, 사이토 다다시에게(이강공 동경행 건에 대한 건강상의 이유로 사양)
(16) 이강공 서한, 사이토 다다시에게
(17) 이강공 서한, 사이토 다다시에게
(18) 이강공 서한, 사이토 다다시에게(일신상 관련 억울함 호소)
(19) 이강공 서한, 사이토 다다시에게(일신상에 관한 진정)
부록: 경찰 관계 이강 신변 조사
(20) 이강공 서한, 사이토 다다시에게(군사령관 허가에 따른 휴가 중, 신변 보고)
(21) 이강공 의견서, 이왕직 인사 관련
(22) 이강공 의견서, 총독에게(이왕직 개혁에 관한 의견)
(23) 이강공 각서
(24) 이(강)공 신변 조사 보고
(25) 이강공 구두 각서(이왕직 개혁 호소)
(26) 이강 진술서, 사이토 총독에게
(27) 이강공 서한, 사이토 총독에게(섭정궁전하를 언급한 문제에 대한 사죄 건)
(28) 이왕직에 관한 사이토 마코토 각서
(29) 이강공 사자의 전언
(30) 이강공 전하 동경(수정) 체재 중 행장 보고 기타
(31) 이왕 전하 친용금 내역
(32) 대정원년(1912)~동12년(1923) 이강공가 경비 지출 조사
황실 유일 독립운동가 의친왕 이강은 사이토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다. 언젠가,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원본과 내용을 소개할 날이 오길 기대한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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