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문화유산은 이제 그만!
얼마 전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이준은 페이스북 전체 공개의 글에 자신의 소장품 사진을 올렸다. 해당 물건은 차연茶硏 또는 차연자茶碾子라고 하는 것으로 찻잎을 잘게 부수는 도구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사진에 큼지막하게 "황실가전수 전전다례용 연"이라고 썼다. 즉 의친왕 때부터 왕가('황가'는 일종의 참칭이다.)에서 대대로 사용한 것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은제에 부분부분 금도금한 것이 마치 20세기 전반 이왕가 미술품 제작소 제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가짜다. 그것도 중국 당나라 때 물건을 복제한 것이다.

진품은 중국 산시성(섬서성) 푸펑현 법문사 지하궁전 출토품이다. 법문사 지하궁전은 1981년 전탑이 무너지고 이후 복원을 준비하며 1987년 기단 하부를 조사하던 중 발견되었다. 지하궁전 안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당대 공예품 수천 점이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저 차연의 진품이다.
진품 차연은 높이 7.1cm, 길이 27.4cm, 너비 4.4cm, 홈 깊이 3.4cm, 눌러 누르는 판의 길이는 20.7cm이며, 무게는 1168g이다. 주조 후 망치로 두들겨 성형하였고, 문양은 금도금(鎏金) 장식했다. 전체구조는 직육면체로 찧는 홈(碾槽), 누르는 둥근 원판(轄板), 홈을 담는 좌대(槽座)로 이루어져 있다. 홈의 양쪽 끝은 여의두 모양이며, 누르는 판의 중앙에는 작은 보주(寶珠) 모양의 손잡이를 달았다. 홈 양쪽에는 기러기와 구름무늬를 새겼다. 그리고 좌대 아래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있다.
"함통 10년(869년), 문사원(文思院) 제작 은제 금화 장식 차연자(茶碾子) 1점 및 뚜껑, 총 무게는 29량. 장인 신 소원(邵元), 제작 감독관 신 이사존(李師存), 판관고품 신 오홍각(吳弘慤), 사 신 능순(能順).(咸通十年文思院造銀金花茶碾子一枚並蓋,共重廿九兩. 臣匠邵元, 審作官臣李師存, 判官高品臣吳弘慤, 使臣能順)."

1987년에 세상에 처음 알려진 물건이다. 가능성은 둘 가운데 하나다 의친왕가가 당나라 때 만들어진 진품 물건을 갖고 있었던가 아니면 1987년 이후 중국에서 복제된 물건을 구해 집안 대대로 물려받았다는 거짓말을 했거나. 그러나 진품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준 소장품을 자세히 보면 복제품의 흔적(동일 문양, 기계로 만든 보주 등)이 역력하다. 중국에서는 저 차연의 복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복제품이라도 물려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건 의친왕은 알지도 못했을 물건이며 이준의 부친 이곤 역시 1984년, 진품이 공개되기 전에 사망했기에 이준이 물려 받았을리 만무하다.
의친왕기념사업회의 가짜 문화유산 파동은 이번 만이 아니다. 2023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 이하응 난초 그림 가짜를 들고와 출품하겠다고 하여 문제를 일으켰고, 또 근자에는 민긍호의 업적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 고종의 가짜 칙명을 들고 나타나 특별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중국산 짝퉁 문화유산을 들고 다니며 "집안 대대로 물려받았다" 운운하는데도 소위 문화유산 공부하고, 또 그것을 업으로 한다는 사람들조차 이런 그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으니 한심할 다름이다. 포스팅에 보면 여러 차박물관을 돌며 황실전수품이라며 출품하고 있던데, 이것만은 출품 안 되었길 바란다. 혹여라도 전시가 되었다면 박물관 자격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가짜와 진짜가 혼동스런 시절이라 해도, 복제품을 구해 전세품으로 호도하는 것은 한참 잘못된 행동이자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는 행위다. 또한 조상을 얹어 거짓을 일삼는 것은 조상마저 욕되게 하는 행동이다.
의친왕기념사업회의 가짜 이하응 난초 그림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
수묵의 세계화 원년? '대한제국황실 수묵유산전'이 우려되는 이유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9월
'전남수묵비엔날레'는 전라도 망신 시키지 않으려면, '대한제국 황실 수묵유산전'이란...
blog.naver.com
의친왕기념사업회의 민긍호 가짜 칙명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
가짜 칙명으로 의병장 민긍호를 욕되게 하는, 의친왕 이강
지난주 원주에서 민긍호 의병대장 기념사업회 발대식이 있었다. 이때 의친왕기념사업회는 고종황제가 민긍호 의병장에게 내린 칙명을 공개했다. 기사 전문은 아래 링크한다. ‘민긍호 의병장
alsdaskind.tistory.com
'이왕가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토 히로부미에게 신세 한탄한 의친왕 이강 (0) | 2025.05.17 |
---|---|
우국지사 매천 황현, 의친왕 이강을 기록하다 (0) | 2025.05.17 |
의친왕 이강, 일본 경찰에 실토하다-의친왕 상해 망명 사건의 진실 (1) | 2025.05.15 |
의친왕, 타인의 삶을 도적질하다. (0) | 2025.05.11 |
덕혜옹주 장례식, 상주는 누구인가? (0) | 2025.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