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전통의 신사와 일본제국의 현충원을 결합한 형태다. 물론 패전 이후 현대 일본은 정치-종교 분리 원칙에 따라 현충원의 지위는 상실했다. 메이지 정부 이래 일본제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금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 외에도 청일전쟁, 러일전쟁 참가자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근대가 한반도 침탈과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유물론자 관점에서 이 제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나, 여기서 과거 침략을 미화하고 은폐하며, 그 뜻을 결집한다 것이 문제다.
얼마 전 소위 "황손"의 집안에서 여기에 찾아가 1인 시위를 했다는 포스팅 보았다.여기에는 왕공족 이우공(이우 왕자?)이 합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우는 왜 이곳에 합사된 것일까? 이우는 일본육군 중좌로 제2총군 교육참모로 임명되어 사령부가 있는 히로시마에서 출근 중 피폭되어 사망했다. 사후 그는 대좌로 추서되었다. 이우는 군복을 좋아했고, 특히 기병 보직을 좋아했다고 한다. "일본을 싫어했다"는 구전 설화가 있지만, 해방 이후에나 나온 이야기다.(이런 이야기는 대개 일제강점기가 이어졌다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가 야스쿠니에 합사된 것은 일본제국 육군 중좌로 전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야스쿠니는 이우를 포함한 왕공족과 인연이 깊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야스쿠니 신사는 봄과 가을로 제사를 지냈고, 여기엔 천황이 참석했다. 여기에는 일본 황가의 왕공가도 줄줄이 참여했다. 당연히 여기에는 이왕가 왕공족도 빠지지 않는다. 이중 몇 장은 여러분도 눈에 익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의 배경이 야스쿠니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아래는 야스쿠니의 왕공족 사진이다.




(출처: 위에서 부터 차례로)
靖国神社臨時大祭委員, 靖国神社臨時大祭記念写真帖, 1937.5
靖國神社臨時大祭委員, 靖國神社臨時大祭記念寫真帖 : 昭和十三年十月, 1938.10
靖國神社臨時大祭委員, 靖國神社臨時大祭記念寫眞帖, 1939.5
靖國神社臨時大祭委員, 靖國神社臨時大祭記念寫真帖 : 昭和十四年十月, 1939.10
靖國神社臨時大祭委員, 靖國神社臨時大祭記念寫真帖 : 昭和十五年四月, 1940.4
靖國神社臨時大祭委員, 靖國神社臨時大祭記念寫真帖 : 昭和十五年十月, 1940.10
靖國神社臨時大祭委員, 靖國神社臨時大祭記念寫眞帖, 1941.4
'이왕가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순종 부탁 종묘 봉행엔 "아퍼 못함", 일본 황태자 약혼식엔 "내가 갈게" - 이강공의 참모습 (0) | 2026.09.12 |
|---|---|
| 황실 유일 독립운동가 이강, 그 가짜 역사 만들기: 이해경 인터뷰 (0) | 2026.09.07 |
| 독립운동가인줄? 이강 공의 사생활(4회: 1928.11.8.~11.13. 교토호텔에서 친일파와 오찬) (0) | 2026.09.06 |
| 독립운동가인줄? 이강 공의 사생활(3회: 1928.11.1.~11.7. 메이지 천황 무덤 참배) (0) | 2026.09.04 |
|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황손을 자처하는 해괴한 짓“ (0) | 2026.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