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순종 부탁 종묘 봉행엔 "아퍼 못함", 일본 황태자 약혼식엔 "내가 갈게" - 이강공의 참모습

자불어 2026. 9. 12. 22:36

조선시대 종묘에서는 계절마다 연 4회 대제를 거행했다. 일제강점기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제사의 섭행은 이왕, 즉 순종이 맡았다. 순종은 이 제향만큼은 이어가고자 노력했던 듯하다. 그러나 1924년 여름 제사(하향대제夏享大祭)는 그러지 못했다. 다리가 아팠던 순종은 조선에 있는 가장 가까운 혈친인 이강공, 전 의친왕에게 대신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강공은 자신도 아프다며 바로 거절했다. 그것이 5월 6일의 일이다. 그러나 의친왕은 그달 말인 5월 23일, 동궁 성혼 향연에는 참석 소식을 알리며 일본으로 향했다. 그 동궁은 바로 훗날 쇼와천황이 될 사람이었다. 아래는 해당 기사다. 


대제의 섭행, 왕 전하는 편찮으셔서 이강공 전하께서
오늘 6일 오후 9시부터 종묘에 봉행할 하향대제는 앞서 보도한 바와 같이 이왕 전하께서 친히 행하시려 하셨으나 오래 전부터 편찮으시던 다리가 오히려 쾌차하지 못하셔서 이강공 전하께서 대신하신다고 한다.
(시대일보1924년 5월 6일 /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DB)

대제는 이재극 씨 대행
리강공 전하도 편찮으셔서 지난 6일 오후 9시부터 종묘에 봉행한 하향대제는 이왕 전하께옵서 진행하셨으나 다리가 편찮으시어 이강공 전하께옵서 섭행하라고 하셨으나 이강공께서도 역시 편찮으시므로 전 이왕직 장관 이재극 씨가 대행하였다고 한다.
(시대일보 1924년 5월 7일 /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DB)

이강공 전하 동상(도쿄 방문)
공 전하는 동궁 전하(훗날 쇼와 천황)의 성혼 향연회에 참석을 위해 오는 24-25일경 동경으로 떠나신다고 함.
(경성일보 1924년 5월 23일 /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DB)


어떤 이들은 자료조차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1919년 이강공이 내내 감금, 적어도 여행의 자유가 박탈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총독관저 녹천정에서의 조사 기간 이후 이강공으로부터 이동이 자유를 박탈했던 적은 없었다. (사실 녹천정에서 취조했던 것은 일종의 특혜였다.) 또한 의친왕은 권력자와의 친분, 비호를 갈구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그랬고 역대 총독 및 정무총감에게 그랬다. 일본 황실과 공가들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