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군 12

의친왕의 전 애첩 '연년이'

동아일보 1921년 3월 8일자에 실린 기사다. 이강 공 전 애첩을 협박하고 오십원을 강탈시내 권농동 88번지 사는 양대현梁大鉉(38세)는 정영원鄭永源(41세)이란 사람과 공모하고 항상 상해上海 가정부(임시정부)와 연락하여 금전을 모집하고자 시내 당주동 이강李堈 공의 전 애첩愛妾 이연연이를 협박하되 금전을 제공해야지 만일 내지 아니하면 총살하겠다고 협박하였으므로 연연이는 어찌 몹시 놀랐던지 오십원을 제공하였으며 그 외에도 각처에서 금전을 강탈한 죄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각 1년 6개월의 선고를 내렸는데 그대로 복죄하였다더라. 황실 유일 독립운동가 의친왕에게는 여러 여성이 있었다.(개벽 기사를 보면 그가 이 방면에 얼마나 유명했던 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이름을 남긴 이들은 정실이거나 자녀가 있..

이왕가 사람들 2024.04.14

의친왕, 이강 공의 축첩

개벽은 천도교에서 낸 잡지로 1920년 6월에 창간했다. 천도교의 대종사장 정광조는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 중이던 교주 손병희와 의논하여 교리의 연구 선전과 조선 신문화의 향상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고, 개벽은 그 결실이었다. 손병희와 의친왕은 친분도 깊었다니, 개벽에 소개된 기사는 의친왕을 잘 알고 쓴 글이리라. 아래는 1924년 7월 1일 발간된 제49호의 기사다. 개벽의 기사 제목은 색색형형의 경성 첩마굴 가경가증할 유산급의 행태 色色形形의 京城 妾魔窟 可驚可憎할 有産級의 行態번역하면 각양각색 경성의 첩 소굴, 놀랍고 가증스러운 유산계급의 행태글쓴이는 관상자觀相者우리 조선 사람치고는 웬만한 사람은 대개 다 첩이 있다. 늙은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고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이도 있다. 학교의..

이왕가 사람들 202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