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연 (2)
일상 역사
하북 정정현 출토 전연 원새4년 각자묘전 河北正定縣出土前燕元璽四年刻字墓塼 정기중程紀中 1977년 5월 하북성河北省 정정현正定县 대풍둔촌大豐屯村 사원 범운증范雲增이 정정문관소正定文管所로 각자묘전과 두건의 홍도 항아리를 보냈다. 그에 따르면 이 마을의 고묘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한다. 묘실은 이미 파괴되고 남은 것은 이 세 건 밖에 없었다고 한다. 각자전은 청회색으로 길이 32, 너비 16.5, 두께 7.5~8cm다. 양 끝이 부서졌지만 명문이 잘 남아 있다. 명문은 총 54자로, “元璽四年庚戌朔十四日乙未, 奉車都關内侯馬遠越造陶作塼五萬枚, 用功三萬二千, 土室遺監作中將慕容乾清酒七百斛, 牛犊二百頭.”다. 원새는 전연 모용준의 연호로 원새4년은 355년이다. 전연은 337년 모용황慕容皝이 연왕을 칭한 이후 370년..
선비족 삼대 그룹 중 하나인 모용씨가 세운 여러 연나라 가운데 하나로 남연南燕이 있다. 이하는 남연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황제 모용초(385~410, 재위 405~410)의 이야기로 진서 재기에 수록된 이야기다. 남연은 우리 고대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는 삼연三燕 가운데 하나다. 모용초慕容超의 자는 조명祖明으로 모용덕慕容德의 형인 북해왕北海王 모용납慕容納의 아들이다.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업鄴(전연前燕)을 물리치고 납을 광무태수廣武太守로 삼았으나 몇 년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집을 장액張掖으로 옮겼다. 모용덕이 남정에 종군할 때 금도金刀를 남겨두고 떠났다. 모용수慕容垂가 산동에서 거병하고 부창苻昌이 모용납과 모용덕의 아들들을 잡아다 모두 죽였다. 납의 모친 공손씨公孫氏는 나이가 많아 사면받았고 납의 처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