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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전위의 고창국씨연표 서문

뤄전위(또는 나진옥羅振玉)가 정리한 고창국 연표다. 뤄전위는 일본 체재 시절 오타니 탐험대 수집품을 실견할 기회를 가졌다. 그 가운데는 투루판에서 파낸 국씨고창국시대부터 당대까지의 묘전 12건(완형 기준)도 포함되었다. 이는 뤄전위가 고창국 기년을 정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럼 이하 그 서문이다. 고창국씨연표서高昌麴氏年表序 고창高昌의 건국은 북위北魏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멸망은 당唐 초기다. 백성은 염한炎漢(중국인)의 후예이며 그 임금은 서쪽 변경의 호족이다. 비록 개창하고 30년간 (임금의) 성이 세 번 바뀌었으나 (왕통이) 국씨麴氏에게 돌아가고부터 안으로는 문화와 교육을 진작하고 밖으로는 열강을 섬겨, 중원은 안정되지 못하고 해내는 분열되었던 때였건만, 서쪽 사람들은 도리어 소강小康 시대를 열..

오늘의 고전 2024.01.14

(십칠사상각) 당 고조와 고종의 자字만 기록하다

고조와 고종의 자만 쓰다. 高祖高宗獨書字 구당서舊唐書 본기는 황제의 자字를 모두 기록하지 않았고, 신당서新唐書는 고조高祖와 고종高宗 두 황제의 자만 기록했다. 단, 스무 명의 황제 가운데 이 두 명의 황제만이 자가 있었을까, 돌아보면 그런 건 아니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사마씨(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씨(반고班固의 한서漢書)는 한의 본기에서 고제高帝의 자를 쓰고 휘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휘와 자 모두 쓰지 않았다. 사마씨와 반씨는 한의 신하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역사서는 모두 휘와 자를 썼다. 구당서에서 자를 쓰지 않은 것은 고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당서에서 두 황제의 자만 쓴 것은 그 기준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舊紀各帝皆無字, 而新書於高祖・高宗二帝獨書其字, 但二十帝之中只此..

오늘의 고전 2024.01.07

뤄전위의 서수석각록 서문

뤄전위(羅振玉)의 여러 학술적 업적 가운데 손꼽는 것이 돈황문서를 필두로 한 서역 사료의 분석이다. 서수석각록은 신강지역 금석문을 모은 것으로 청의 신강 지배로 얻은 신사료다. 신해혁명으로 그동안 모아 뒀던 자료가 사라지자 그는 무전손繆荃孫(1844~1919)의 자료를 사용했다. 이 책은 1914년에 발간되었지만, 그는 멸망한 청조의 연호를 사용했다. 이는 이후 그의삶에 흑역사가 되는 만주국행의 단초를 보여준다 하겠다. 서수석각록서西陲石刻錄序 내 나이 17세에 처음으로 금석묵본을 수집했다. 강회에서의 성장기를 돌아보면 교유도 드물어 변경의 석묵본(탁본)을 접할 수 없었다. 수집품이라고는 배잠裴岑, 강행본姜行本 두 비석 탁본뿐 다른 것은 없었다. 광서 임진년(1892) 태수 오흥 사람 균보均甫 시보화施補華..

오늘의 고전 202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