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황실 유일 독립운동가 의친왕의 두 얼굴 본문
"우리나라를 병탄 한 일본의 황족이 됨을 원치 않는 바"
나도 한국의 일민一民이라 차라리 독립된 한국의 일 서민이 될지언정, 우리나라를 병탄한 일본의 황족이 됨을 원치 않는 바이며 반드시 임시정부 제공諸公과 악수 동심하여 사생 간에 광복에 힘을 다하여 여러 동포가 고심하는 만의 일이라도 보조하려 하는 것이니 나의 이 결심은 하나는 자가自家의 복수를 위한 것이며 하나는 조국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위함이라.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1919.11.20.)에 실린 글이다. 늘 "독립운동가 의친왕" 대목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글이다. 의친왕은 임시정부에 서신을 보내 자신의 뜻을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 아래는 체포되고 며칠 뒤 이강 공이 조선총독 사이토(齋藤) 제독에게 전달한 서신이다. 여기서 이강은 이렇게 말한다.
"본인은 한국의 한 왕자인 동시에 일본의 황족임"
총독 귀하,
본인이 중국으로 가던 중 어떻게 귀국의 경찰에 체포되었는가를 알려드렸던 본인의 앞서의 서한들을 총독께서 잘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며칠 전 일본 경관들이 본인에게 와서 즉시 도쿄로 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본인이 자의로 도쿄에 간다고 대중에게 알릴 것을 명령했습니다. 본인은 이러한 처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한국의 한 왕자인 동시에 일본의 황족임을 귀하께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최근 귀하의 경찰들에 의해 최하급의 범죄자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본인은 귀하의 경찰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본인에게 도쿄로 갈 것을 강요한 이유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각하께서 이 경관들의 소행에 대해 본인에게 충분한 해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명:Prince Eui(역자는 의친왕으로 번역했으나 프린스는 왕이 아니니 이강 공일 듯.)
아마도 누군가는 두 번째 기록은 일제의 날조된 기사라고 할 지 모른다. 의친왕에게서 독립운동가의 모습만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대개 이왕가의 유불리에 따라 사료의 신뢰도를 선별적으로 결정하곤 한다.(예: 윤치호 일기에서 고종 독살설은 신뢰해도 의친왕의 방탕한 모습은 일제의 프레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기사는 <자유한국(La Corée Libre)> 제10호(1921.2.)에 실린 글이다. <자유한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파리위원부 통신국에서 발간한 월간잡지다. 1920년 4월부터 1921년 5월호까지 총 13호가 나왔다. 이 잡지의 창간을 주도했던 사람은 김규식金奎植이다. 김규식은 의친왕과 미국 유학을 함께하며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고 하니 다른 것 몰라도 위의 서신이야 말로 다른 어떤 자료보다 믿을 만하지 않겠는가.
의친왕은 많은 글씨를 남겼다. 의친왕의 서예 작품을 보면 문제의 부여 사자루 현판뿐 아니라 여러 족자에서 그는 스스로를 "李堈公(이강공)"이라고 썼다. 몇년전 전시에 출품된 의친왕기념사업회 소장 족자에서도 볼 수 있다.(세종대왕신문 22.10.13. 고종황제아들의친왕 유물전) "公(공)"은 일제(일본 천황)가 부여한 작위다. 이완용 백작, 송병준 후작처럼 말이다. 이완용 '백작', 송병준 '후작'이 불편하다면 더 높은 지위였던 이강 '공'은 어떤까. 이강은 스스로 "公(공)"임을 자부했다. 그리고 이는 여러 점의 서예 작품으로 남았다. 위의 편지와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의친왕은 일제로부터 받은 작위를 버리지 않았다. 고종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자식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었다. 단 고종은 스스로 오른 자리인 '황제'를 잃었지만 의친왕은 일제로부터 하사 받은 지위인 “공(公)”을 빼앗겼다. 진정 그가 독립지사였다면 작위를 빼앗기기 전에 당당히 던져버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유길준처럼 말이다. 탈출해 성공하면 대한의 백성, 실패하면 황족의 일원이야말이 오히려 의친왕의 본모습은 아닌 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메이지천황 장례식에 참석해 황족의 일원으로서 일본 친왕들의 뒤를 따라가는 의친왕, 아니 이강 공의 사진을 더한다.
(사진 제목) "장례행렬(御大葬列) 각 황족 전하"출전) 御大葬写真帖(帝国軍人教育会編, 大成会出版部, 19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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