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특별시 소재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은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기억"이란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때 출품된 작품 가운데, 의친왕 서예라고 하는 10폭 병풍이 있다. 작품 사진은 아래와 같다. 사진은 도록에 게재된 순서(한문이기에, 우-좌, 상-하)대로 배열한 것이다. (아래 번호는 필자가 임의로 부여했다.)

경운박물관은 이 자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보를 소개했다.
의화군 10폭 병풍 19세기말 종이에 먹 화폭 26.5cm 세로 78.4cm 의친왕기념사업회 소장 / 의친왕이 어린 시절 직접 쓴 병풍이다.
경운박물관은 이 글씨를 의친왕이 직접 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틀렸다. 5번을 보자. 여기 말미에 '임신壬申 하夏'라고 되어 있다. 이 글을 쓴 시점이 임신년 여름이라는 것이다. 즉 이 글을 쓴 시점을 "19세기말"보다는 구체적인 시점으로 특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임신년은 언제일까? 19세기 후반의 임신년은 1872년이다. 의친왕 이강이 태어난 해는 1877년으로 1872년은 의친왕이 태어나기 5년 전이다. 1872년 제작품이라면 의친왕이 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일 이것이 이강의 친필이라고 우긴다면 다음 임신년인 1932년이다. 박물관은 의친왕의 "어린 시절"을 56세(우리 나이로)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의친왕의 필력으로 봤을 때 아무리 전서篆書라지만 1932년에 이리 조잡한 글씨를 남겼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 점에서 뒤의 "李堈"은 훗날 누군가가 조작하려고 덧붙인 글씨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먹색도 다르고, 게다가 '임신 하'까지 전서로 쓰고 이름만 해서로 썼다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즉 필자의 판단으로 이 작품은 위작僞作이다.
자료의 진위 문제뿐 아니라, 박물관이 이 전시를 하려면, 순차부터 잡아서 공개했어야 한다. 문외한이 봐도 6에서 시작해 5로 끝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물관은 그리 하지 않았다. 뒤죽박죽이란 표현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일 것이다. 원본 병풍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일단 글자를 판독해, 순차를 바로잡아보면 다음과 같다.
6. 言語 君子必欲訥於言而
7. 敏於行則可知篤行必先於善言矣豈可
8. 登枝而捐根舍本而取末乎論語曰巧言
1. 令色鮮矣仁夫言語豈欲如鄧艾之口喫
2. 語艾艾之狀哉必也遠其鄙悖愼其樞機
9. 若或對人言欲媚其人之意雖有不合於
10. 道强取證以勒做堅吾必謂合於道則難
3. 免巧言令色之名而雖不顧自己■法之
4. 如何而非若正大强做體貌他人之■則已
5. 爲心笑矣豈能可不習而哉 壬申 夏 李堈
전서로 딱히 규범에 맞춰 쓴 글씨도 아닌지라 ■ 로 표시한 두 글자는 끝내 판독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략의 뜻도 파악이 되고, 여기에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인 듯하여 일단락하고자 했다. 빠진 글자를 고려해 대략의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언어
군자는 반드시 어눌하게 말해도 민첩하게 행동하려 한다. 즉 도타운 행동이 좋은 말보다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나뭇가지에 올라 뿌리를 버리고,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취하겠는가.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자는 어진 이가 드물다.” 하였다. 무릇 말이라는 것이 어찌 등애鄧艾의 입처럼 더듬거리는 꼴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겠는가. 반드시 그 비루하고 패역한 것을 멀리하고, 말의 요체에 성실해야 한다. 만일 혹 어떤 사람이 말할 적에 상대의 뜻에만 맞추려 하여, 비록 도리에 합당하지 않음에도 억지로 증거를 끌어다 고집스럽게 “내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교묘히 말하고 얼굴빛을 꾸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스스로는 어떤지 돌아보지 않은 채, 마치 정대한 체하며 억지로 남의 태도를 흉내 내는 것이라면, 결국 마음속으로조차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어찌 배우지 않고서 가능하겠는가?
임신년 여름, 이강(李堈)
박물관은 물질문화 해석에 권위를 가진 기관이다. 시민들은 박물관이 전시한 물건, 공개한 정보라면 일단 신뢰하다. 그렇기에 박물관은 전시와 정보 제공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물건의 진위나 가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전시품의 선정, 특히나 개인 소장품을 다룰 때는 더더욱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박물관이 사설 화랑이나 골동품 가게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그렇기에 박물관은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문가로서 학예직을 둔다. 여기에 학예직이 어디 있는가. 개인 소장품을 소장자 주장, 액면 그대로 전시, 소개해서야...
여기에 더해 이 전시도록에는 태극기 담배펠트라는 전시품도 보인다. 캡션에는 제작 연도가 "1908년"이다. 그리고 설명으로 "의화군이 미국 유학시절 간직하였던 담배펠트이다"라고 했다. 미국유학 중 의화군은 의친왕이 되었고 1906년에 귀국했다. 이후 미국에 간 적이 없는데, 도대체 1906년 돌아온 의친왕이 어떻게 유학시절, 미래의 물건인 1908년 담배펠트를 갖고 있었을까? 참으로 해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옛날 미드 “환상특급”에 나올 법한 소재다.)
또한 의친왕기념사업회 역시 입수 또는 구입한 작품을 덮어놓고 의친왕의 작품이라고 내어놓기보다는 자료의 성격과 내용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특히 이왕가미술품제작소 공예품은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값을 치를 수 있는 자 누구나 살 수 있던 물건이었기에 그것만으로 왕실 소용이라고 주장하는 건 도리어 망신만 사기 십상이다. (심심치 않게 옥션, 특히 일본 옥션에 출품된다.)
제 해석에 대한 반박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전시에서는 순차가 올바로 되어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근데 왜 도록에서는, 그리고 이 순차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연도의 문제도 지적했을 텐데, 어찌된 일일까요?

자세한 전시 내용은 경운박물관 홈페이지를 참조
소색비무색
의왕 영친왕 책봉의궤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소장
en.kw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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