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친왕, 이강공, 이강은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은 상해 망명 기도 사건에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 그는 존경할 여지가 일도 없는 인간이다. 상해 망명 기도 사건 때는, 측실을 데리고 가겠다, 고종이 남긴 서류를 가져가겠다 시간을 끌었으며, 붙잡힌 뒤로는 본인은 그저 끌려왔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내가 했소'가 아니라 '당했다', '모른다'며, 이왕직에 대한 불만이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는 일본인 권력자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국권피탈 전에는 이토 히로부미에 매달렸고, 식민지가 되고는 역대 총독에게 호소했다. 메이지 천황 사후 데라우치 총독에게 능묘를 참배하고 싶다고 했던 편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다음 매일신보 기사는 총독관저의 천장절 배관식에 참석 예정이란 기사다.
이강공 전하가 제일착
금일은 금상 천황 폐하의 제48회 탄생 봉축일이다. 오전 10시부터 총독 관저에 진영 참배자와 배하자를 고대하는 제반 설비와 장식이 완성되어 배하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조선에 있어서 제1차 축하를 봉정하실 이왕 은 전하 및 동비 전하께옵서는 동경에 체재 중이시므로 양 전하는 직접 궁중 봉하식에 참석하실 터이므로 이강공 전하께옵서서 조선왕공족을 대표하여 참석하옵시게 되었다. 이강공 전하께옵서는 오전 10시 10분에 자저에서 출발하셔서 동 20분 총독 관저에 도착하시어 진영을 참배하신 후 동 25분 관저 퇴출해 귀저하신 후 축하식순에 의하여 동 30분부터 재경외국영사관의 축하가 있을지며, 다음에 본부(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의 관리는 11시부터 순서로, 1. 경성 재근 본부 소속 관서 칙임관, 1. 본부 관방 및 각 국부 고등관 3등 이하는 각 대표 1명 칙임관은 각 대표 1명, 1. 경성부 소재 제1차 소속관서장 1. 경성부윤, 1. 임업시험장장, 1. 조선신공궁사, 중추원부의장(대리)고문, 참의의 배하와 조선귀족의 축하가 있은 뒤 동 12시에 폐회할 터.[매일신보 1926.10. 31.]

그는 일본 황실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이강은 메이지 천황이 죽었을 때 홀로 상장(喪章)을 1년간 달고 다녔다는 데, 위 기사는 순종 승하 후 1년도 안된 시점에 벌어진 일이다. 물론 아래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강공 전하 천기봉사 언상
이강공 전하께옵서는 12일 오전 10시 천기봉사 문안 인사를 올려 달라고 총독에게 의뢰하였으므로 총독부에서는 궁내대신에게 그 뜻을 타전하였더라.[매일신보 1926.11.13.]

이강은 조선왕공족 대표로 일본에 가는 것을 즐겼다. 기회가 되면 그가 얼마나 뻔질나게 조선과 일본을 오갔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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