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실의 의례에는 빠지지 않았던 의친왕 이강은 1928년 11월 10일 교토에서 열린 쇼와 천황 즉위식에도 참석했다. 그는 10월 18일 경성을 떠났다. 본래 일정은 11월 말 돌아오는 것이었으나, 12월 19일 저녁에야 부산에 도착했다. 두 달을 채운 셈이다. 다음 문서는 의친왕 이강이 왜 일정을 늦추었는지 설명해 주는 자료다.
이 역시 의친왕 이강의 은거 전후 사정을 볼 수 있는 경비관계철(이강공비 양 전하 관계)에 포함되어 있다. 본 문서는 국가기록원이 소장 및 온라인 원문공개한 자료로, 표지와 색인, 중복 1건을 제외하면 103건의 문서가 있다. 문서의 작성 시기는 1928년부터 1932년까지다. 이 문서는 그 중 가장 선행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1928년 모월 12일 자 문서다. 문서의 ‘어대전(御大典)’은 즉위식을 말한다.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도 술과 여성에 탐닉, 늘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그리고 그랬기에 구질구질했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발신: 경기도 경찰부장
수신: 경무국장 귀하
이강공(李堈公) 전하 귀경(歸京)에 관한 건 보고
이강공 전하께서는 어대전(御大典) 이래 도쿄 제국호텔에 체류 중이신데, 이달 15일경 출발하여 귀경(귀선, 조선으로 돌아옴)하실 예정이었으나 당분간 연기되시는 모양이다. 그 내용을 탐문한바, 수년래 현안(懸案)이었던 공가(公家) 기본재산에 관한 것으로서, 앞서 고(故) 이왕(李王) 전하의 유언서에 의해 이왕가 재산의 일부를 공가에 나누어 주는 방안을 도모하는 중이나, 이 일은 이왕직(李王職)에 의뢰하면 이왕직은 총독부와 협의한 후에 라고 하고, 총독부에 의뢰하면 궁내성과 협의한 후에 라고 하여 수년간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현재 이왕직 장관·차관, 총독, 총감도 모두 도쿄에 있는 김에 이번 기회에 반드시 결정해 달라고 차관에게 요구하고 있는 중으로, 만약 차관이 애매한 답변만 하고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공 전하께서는 계속 체류하시어 본건이 확정될 때까지 귀선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계시므로 귀경(귀선) 기일은 아직 미정이다. 또한 9일에는 정무총감 및 센고쿠(仙石) 종질료(宗秩寮) 총재를 초대하셨는데, 이는 필경 본 문제에 관하여 희망 사항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라고 한다.
종래 어대전 참렬(參列) 황족 분들에게는 상당한 수당금(5, 6천원)이 궁내성으로부터 하사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황족 분들의 문복(紋服, 문양 예복) 비용이 1인당 5천원씩 총계 18만 원이 소요된 까닭에 수당금은 함께 하사될지 의문이며, 혹시 하사되지 않을지도 알 수 없다. 공 전하께서는 이를 기대하시어 여러 차례 무관(武官)에게 물어보셨으며, 또한 조선군으로부터의 연래(年來) 상여금 및 이왕직으로부터의 세말(歲末) 상여 하사금은 도쿄로 송금하도록 사무관에게 의뢰해 두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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