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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당검唐儉은 자가 무약茂約 병주并州 진양인晉陽人이다. 북제北齊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옹邕의 손자다. 부친 감鑒은 수隋의 융주자사戎州刺史였다. 당검은 불우한 환경에 처해 규범에 얽매이지는 않았으나 부모를 섬김에 효자로 명성을 날렸다. 전에 당감(당검의 부친)이 고조高祖와 친분이 있어 함께 금위禁衞를 지휘했다. 고조가 태원유수로 있을 때 검과 태종은 매우 밀접하게 지냈다. 당검은 태종에게 수의 황실이 혼미하고 흐트러졌으니 가히 천하를 도모할 만하다고 종용하며 설득했다. 태종이 고조에게 아뢰자 불러들여 몰래 세사를 논했다. 당검이 말했다. “명공明公께서는 옥좌에 오르실 귀한 상입니다. 또한 이씨도 도첩에 있지 않습니까. 천하의 향배는 현재의 조정에 있지 않습니다. 관부의 창고를 열어 남쪽의 호걸들에게 손짓하고 북..
정지절비발程知節碑跋 뤄전위(羅振玉)가 정지절程知節(589~665) 비문을 읽고 고증한 글로 병인고丙寅稿에 실려있다. 정지절은 당대 명장 중 한 명으로 본래 이밀李密의 휘하였으나 왕세충王世忠에게 붙잡혔다가 당에 항복했다. 진왕부秦王府 좌삼통군左三統軍이 되어 송금강宋金剛, 두건덕竇建德, 왕세충과의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능연각凌煙閣 24공신 중 19위로 올라갔으며, 고종 때는 총산도행군대총관蔥山道行軍總管으로 서돌궐 아사나하로阿史那賀魯의 반란을 진압했다. 현재 정지절 비는 소릉박물관昭陵博物館에 있다. 이 비는 일찍이 ≪금석록일록金石録日録≫에 수록한 바 있다. 20년 전쯤 허경종許敬宗이 지은 비문이 출토되었다. 글씨는 양정暢整이 썼는데, 그는 ≪청하장공주비清河長公主碑≫도 썼다. 비문의 글자는 또렷했으나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