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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뤄전위(또는 나진옥羅振玉)가 정리한 고창국 연표다. 뤄전위는 일본 체재 시절 오타니 탐험대 수집품을 실견할 기회를 가졌다. 그 가운데는 투루판에서 파낸 국씨고창국시대부터 당대까지의 묘전 12건(완형 기준)도 포함되었다. 이는 뤄전위가 고창국 기년을 정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럼 이하 그 서문이다. 고창국씨연표서高昌麴氏年表序 고창高昌의 건국은 북위北魏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멸망은 당唐 초기다. 백성은 염한炎漢(중국인)의 후예이며 그 임금은 서쪽 변경의 호족이다. 비록 개창하고 30년간 (임금의) 성이 세 번 바뀌었으나 (왕통이) 국씨麴氏에게 돌아가고부터 안으로는 문화와 교육을 진작하고 밖으로는 열강을 섬겨, 중원은 안정되지 못하고 해내는 분열되었던 때였건만, 서쪽 사람들은 도리어 소강小康 시대를 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教流行中國碑는 기독교의 지파인 네스토리우스교가 중국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비석으로 동시대 동서양 문화교류와 당대 문화의 국제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학력고사 사회탐구부터 각종 세계문화사 시험까지 종종 출제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페르시아 출신 선교사 이사伊斯(Yazdhozid)가 당 덕종德宗 때인 건중建中2년 2월(太蔟月) 7일 대진사 경내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조의랑朝議郎 전행태주사참군前行台州司參軍 여수암呂秀岩이 정관연간 대진사大秦寺 승려 경정景淨의 서술을 적었다. 비의 높이는 197cm, 아래 귀부가 있어 전체 높이는 279cm다. 비신의 너비는 위가 92.5dm, 아래가 102cm이다. 정면에 ‘大秦景教流行中國碑(대진경교유행중국비)’와 송문이 적혀 있다. 비신에는..
양왕대차거안주조상비는 1903년 독일 조사단에 의해 독일로 반출되어 베를린박물관이 소장했다. 아래 글은 뤄전위가 청말 정치가이자 수집가로도 유명했던 단방端方(1861~1911)이 유럽에 시찰 갔을 때 구해온 탁본을 고증한 글이다. 서구열강 및 일본에 의해 투루판 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기존 중국 역사 기록에는 몇 페이지에 불과했던 고창국 역사가 밝혀지기 시작했고, 뤄전위 또한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양왕대차거안주조상수사비발 涼王大且渠安周造象脩寺碑跋 이 비석은 근년 신강에서 출토되어 지금 독일수도박물원(베를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광서 을사년 상서上書 단오교端午橋(端方)가 태서로 정치를 시찰하러 갔을 때 탁본 한 매를 떠서 가져왔다. 비는 양왕凉王 대차거안주大且車安周가 불상을 조성한 사실을 기..
뤄전위(羅振玉)의 여러 학술적 업적 가운데 손꼽는 것이 돈황문서를 필두로 한 서역 사료의 분석이다. 서수석각록은 신강지역 금석문을 모은 것으로 청의 신강 지배로 얻은 신사료다. 신해혁명으로 그동안 모아 뒀던 자료가 사라지자 그는 무전손繆荃孫(1844~1919)의 자료를 사용했다. 이 책은 1914년에 발간되었지만, 그는 멸망한 청조의 연호를 사용했다. 이는 이후 그의삶에 흑역사가 되는 만주국행의 단초를 보여준다 하겠다. 서수석각록서西陲石刻錄序 내 나이 17세에 처음으로 금석묵본을 수집했다. 강회에서의 성장기를 돌아보면 교유도 드물어 변경의 석묵본(탁본)을 접할 수 없었다. 수집품이라고는 배잠裴岑, 강행본姜行本 두 비석 탁본뿐 다른 것은 없었다. 광서 임진년(1892) 태수 오흥 사람 균보均甫 시보화施補華..
정지절비발程知節碑跋 뤄전위(羅振玉)가 정지절程知節(589~665) 비문을 읽고 고증한 글로 병인고丙寅稿에 실려있다. 정지절은 당대 명장 중 한 명으로 본래 이밀李密의 휘하였으나 왕세충王世忠에게 붙잡혔다가 당에 항복했다. 진왕부秦王府 좌삼통군左三統軍이 되어 송금강宋金剛, 두건덕竇建德, 왕세충과의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능연각凌煙閣 24공신 중 19위로 올라갔으며, 고종 때는 총산도행군대총관蔥山道行軍總管으로 서돌궐 아사나하로阿史那賀魯의 반란을 진압했다. 현재 정지절 비는 소릉박물관昭陵博物館에 있다. 이 비는 일찍이 ≪금석록일록金石録日録≫에 수록한 바 있다. 20년 전쯤 허경종許敬宗이 지은 비문이 출토되었다. 글씨는 양정暢整이 썼는데, 그는 ≪청하장공주비清河長公主碑≫도 썼다. 비문의 글자는 또렷했으나 매..
뤄전위(羅振玉)가 자신이 소장한 베트남 동전을 고구한 글로 면성정사잡문갑편 面城精舍雜文甲編에 수록되어 있다. 동전 명문으로 베트남 왕조의 연호를 고구한 글로, 빨대꽂아 알아냈다(濡管識之)는 표현이 두고두고 남을 듯하다. 전문고錢文考 내가 가진 옛 동전 가운데 16개는 모양이 얇고 작은데 표면은 편평하고 윤곽이 없다. 크기는 대개 일정하고 재질은 붉은 동銅이다. 아주 옛날의 물건은 아닌데, 가장 오래된 것이 약 4백년 전, 근자의 것은 1~200년 전 것이다. 동전에는 ‘원풍통보元豐通寶’, ‘소풍평보紹豐平寶’, ‘대정통보大定通寶’, ‘천부원보天符元寶’, ‘정륭원보正隆元寶’, ‘치평성보治平聖寶’, ‘한원통보漢元通寶’, ‘태화통보太和通寶’, ‘성원통보聖元通寶’, ‘천성원보天聖元寶’, ‘상통원보祥通元寶’, ‘안..
아래 글은 진방직陳邦直의 나진옥羅振玉傳(新京: 滿日文化協會: 康德10(1943))을 번역한 것이다. 동년시대童年時代상우 나씨의 가계 上虞羅氏家世 나진옥羅振玉 선생의 원적은 절강성浙江省 상우현上虞縣이다. 증조 돈현공敦賢公(자 희재希齋)은 가경년간(1796~1820) 염하鹽河의 막부에서 관직 생활을 하며 강회江淮를 오가다가 결국에 강소성 회안부淮安府에 터를 잡았다. 돈현공은 아들이 9명 있었는데, 셋째는 이름이 학상鶴翔(자 익운翼雲)으로 그가 선생의 조부다. 강소성 고우주高郵州 지주知州를 역임했다. 학상공은 아들을 둘 두었는데, 장자가 수훈樹勳(자 요흠堯欽)으로 그가 선생의 부친이다. 강녕江寗 청하현승淸河縣丞을 역임했다. 1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강남의 문인 집안(書香世族)이다. 고향 회안 故鄕淮安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