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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의 투루판 아스타나 무덤 발굴 기록 2. 본문

중국 이야기

스타인의 투루판 아스타나 무덤 발굴 기록 2.

자불어 2022. 8. 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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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Ast.i.1의 정리

Ast.i.1로 가는 트렌치를 정리하며 다수의 작은 비단 조각들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그 중에는 능직으로 만든 훌륭한 무늬의 비단 조각[Ast.i.1.08, 011(Pl.78, 83)]과 비단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한문 문서 잔편이 있었다. 이것들은 아마도 관재를 꺼낼 때 딸려 온 것으로 보인다. 입구 주변 실내는 2~3피트 정도 잔모래로 덮여 있었는데, 이것은 파괴된 벽을 막기 전까지 그 사이로 모래바람이 들어와 쌓일 정도로 한동안 무덤이 열려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서쪽 벽 근처에서 소박한 매트 위에 누워있는,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두  구의 시신으로도 설명된다. 둘 모두 모리가 떨어져 났갔는데, 관에서 시신이 내팽겨쳐지면서 그리 되었음에 분명하다. 다만 수의 조각이 남아있었는데, 평범한 면직물에 변색된 얇은 비단이 덮여 있었다. 그리고 시신 한 구의 머리에 평이한 비단으로 주름 장식을 덧댄 무늬 있는 원형 비단[Ast.i.1.01(Pl.80)]이 매우 손상되고 부서지기 쉬운 상태로 남아있었다.

(Pl.78) Ast.i.1.011 - 스타인은 글에서 하나는 08, 하나는 011이라고 했지만 도판번호는 모두 011이다. 순서에 따라 이 그림이 Ast.i.08로 생각된다.
(Pl.83) Ast.i.1.011
(Pl.80) Ast.i.1.01
i.1.9~10(Pl.84)

 

Ast.i.1.의 발굴품
이 무덤군에서 발견된 장식 얼굴 가리개의 첫 표본은 대체로 사산조 도안의 특징을 갖고 있는 일련의 흥미로운 다색 무늬 비단을 보여준다. 여기서 수집한 이것과 그외 무늬 비단의 문양은 기원을 서쪽 또는 중국에서 기원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음 장에서 더 상세히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무덤 발굴과 유물 수집 줄무늬 다색 비단 및 다마스크 직물[i.1.9~10(Pl.84)] 묘실의 서북쪽 및 동남쪽 모퉁이 벽에 붙어있었다. 잔[i.1.5~6(Pl.90)], 큰 항아리(i.1.03), 작은 사발(i.1.07)을 포함한 각기 다른 형태의 도기 5개가 망자의 머리를 두었던 남쪽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무덤 안에서 망자용으로 음식을 담아 두기 위한 것임에 틀림 없다. 몸통은 회색 또는 검은색 바탕에 장식띠를 돌렸으며, 주로 흰색 원반과 붉은색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슷하게 장식한 토기들이 아스타나 무덤에서 두루 확인된다. 채색이 템페라로 되었있고 깨지기 쉽다는 점은 이 도기가 장례 용도로 특별히 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형태의 장식 토기가 아스타나 무덤군 전체에 두루 매장되었다. 문양을 템페라로 채색했고 부패하기 쉽다는 사실은 이 토기가 장례용으로 특별히 장식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안쪽 벽에서는 훌륭한 솜씨로 둥글게 깎고 색도 잘 보존되어 있는 우아한 형태의 작은 나무 오리[i.i.012(Pl.104)]가 발견되었다. 다른 무덤에서 발견된 오리 조각 두 건과 마찬가지로 행복의 상징으로 망자와 함께 안치한 것으로 보인다. 

i.1.05(Pl.90)
i.1.06(Pl.90)



i.1.012(Pl.104)

Ast.i.2에서 수습한 유물
다음에 조사한 Ast.i.2. 무덤에서는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두 구 모두 심하게 부패되었고 손상되었다. 남아있는 부장품은 조악한 토기 사발로 Ast.i.1.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했다. 그중 i.2.04(Pl.90)이 대표적으로 바닥에는 안에 있던 음식 흔적이 발견되었다. 또한 목기 사발[i.2.05(Pl.91)]도 있었다. 그릇은 시신의 머리를 두었던 남쪽 벽에 열을 따라 놓여 있었다. 또한 머리를 사실적으로 조각한 목제 오리[i.2.06(Pl.104)]와 두 건의 한문문서도 발견되었다. 다수의 파란색 비단 조각은 모두 칠이 칠해져 있었는데, 매우 바스러지기 쉬운 상태로 펼 수 없었다. 그것은 Ast.ix.2에서 처럼 일부 조각이 뒷 벽에 걸려있는데, 거기서 떨어지면서 부스러진 것이다.

 

i.2.04(Pl.90)

 

i.2.05(Pl.91)

i.2.06(Pl.104)


Ast.i.3. 망자의 안대
인접한 무덤 Ast. i. 3에서 별견된 두 구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되었고 침입자들에 의해 거칠게 다뤄졌음에 틀림 없다. 두 구는 모두 남쪽에 머리를 두고 있었으며, 그중 작은 것은 아마도 여성으로 생각된다. 그들이 걸치고 있던 무늬 없는 면직물과 황갈색 비단은 섞어 부스러졌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을 덮었던 마스크같은 비단 커버는 비교적 잘 남아있었고 그것을 제거했을 때 망자의 염습(단장)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을 볼 수 있었다. 큰 시신은 남성임에 분명했고 다른 시신의 동쪽에 입구와 가까운 쪽에 놓여 있었다. 얼굴 커버는 가운데 부분의 문양 비단은 사산조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훌륭한 도안을 보여주었다.[Ast.i.3a.01(Pl.79)] 주름 장식이 있는 파란색 비단(i.3.a.02) 조각도 발견되었다. 얼굴 커버 아래로 눈 위에 얇은 은판으로 연꽃잎 두 장 양 끝을 이어 붙인듯한 모양의 안대(i.3.a.04)를 놓았다. 각각 중앙부는 살짝 돌출되었고 그 위로 수많은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리고 가장자리는 편평하게 만들고 구멍을 뚫어 표면을 덮는 부분을 꿰매 연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대'의 정확한 목적은 다른 시신에서 더 많은 사례가 확인되어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Ast.i.3a.01(Pl.79)

망자 입 속의 금화
그러나 이곳의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발굴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특별한 무덤 조사 보조원 마시크(Mashik)는 오랫동안 훈련을 통해 망자의 두개골 턱뼈를 작살내 입속에서 금화를 꺼내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한다. 나는 바로 그것이 비잔틴 제국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Pl.120) 화이트헤드(R. B. Whitehead)씨의 분류에 따르면 이 주화는 유스티니아누수 1세(Justinian I r.527~65) 시대 금화의 동시기 복제품이었다. 이것은 무덤의 상한 연대를 가늠케 한다. 같은 그룹의 무덤 2기, 즉 Ast.i.5 and i.6에서 발견된 얇은 금화(Pl.120)도 연대를 획정케하는 증거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금화와 같은 양식이지만 한 면만 일치한다. 마시크는 비록 그 댓가를 거의 받지 못했지만 망자의 입속에 금화 또는 은화가 있는지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습득했다고 자랑했다. 초기의 약탈자들이 같은 발견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탐험한 무덤들 중 마시크나 직접 손대지 않았다던 곳 어디서도 동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요량으로 이리 난폭하게 처리된 두개골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Pl.120) 16. 비잔틴 복제 금화, 5~6세기, Ast.i.5. (망자의 입) / 17. 비잔틴 복제 금화, 5~6세기, Ast.i.3. (망자의 입) / 18, 19. 사산조 주화 호르마즈드 4세(Hormazd IV, r.579~590), 쿠스라우 1세(Khusrau I, r.531~579), Ast.i.3. (시신의 눈)

 

망자에게 주화를 주는 관습
아스타나의 시신에서 발견된 4개의 주화 가운데 3개는 비잔틴 제국 금화 또는 그 모조품(Ast.i.3.023; 5.08; 6.03)이고 하나는 사산조 은화(Ast.v.2.02)로 이 사실은 자연스레 지옥의 항해사 카론에게 주는 삯으로 망자의 입술 사이에 주화를 물렸던 고대 그리스의 관습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샤반느(M. Chavannes)가 1916년 중국 대장경에서 찾아준 참고자료는 이런 관습이 극동에도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는 금화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망자에게 저 세상으로 가는 여정에 적당한 돈을 주고자 했던 투루판 사람들은 그들의 경건한 목적을 위해 귀금속을 쓰려한 이들은 서쪽에서 온 주화를 사용해햐 했다는 점에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드러난 것과 동양과 서양의 매장관습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연결고리는 추적하는 일은 나 보다는 누군가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는 앞서 언급한 세 개의 금화는 동일한 하나의 그룹의 시신에서 발견된 것으로 대략의 연도는 방금 살펴보았듯이 동전의 명문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 싶다.

i.3.b.03(Pl.89)

Ast.i.3.b 시신에서의 발견
다음으로 작은 몸은, 아마 여성으로, 첫 번째 시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안치되었음이 분명하다. 시신은 뒷벽 근처 심하게 부식된 매트 위에 놓여 있었다. 여기에도 얼굴에 원래 다색 무늬 비단 조각으로 만든 커버를 씌웠는데, '사산조' 양식임에 틀림 없다. 이 고운 직물은 너무 부서지기 쉬운 상태여서 이것과 뒤섞여 먼지 속에서 발견된 금박이나 구리조각의 원형을 추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시신에서 발견된 납이 담긴 비단 다마스크제 소형 케이스(i.3.b.02)의 용도도 불분명하다.  눈 위로 앞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형태의 은제 안대[i.3.b.03(Pl.89)]가 놓여있었다. 그 아래로 눈 위에서 두 개의 사산조 은화를  발견했다. 화이트헤드씨는 이 은화를 쿠스루 1세[Khusrû I(Naushirwan, r.531~79)] 또는 호르마즈드 4세(Hormazd IV, r.579~591) 때 발행한 것으로 보았다. 

Ast.i.3.에서 발견된 기타 유물
본래 시신에는 귀중품들이 있었을지 모르나 땅바닥의 흙과 그 주변의 부식된 매트와 뒤섞인 곳에서 첫 번째 침입자들이 관에서 시신을 꺼내며 주목하지 못했던 작은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중앙에 사각으로 구멍을 낸 작은 은제 원반(i.3.06) 세 개는 중국의 동전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초승달 또는 배 모양의 얇은 은판[i.3.012(P.89)] 7개는 어느 장신구의 일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얇은 금사(i.3.013)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리구슬(i.3.07) 7점과 장평오수(長平五銖) 명문이 있는 중국 동전도 1점 발견되었다. 무덤에서는 물론 음식이 담긴 토기 사발[i.3.014~20(Pl.90)]도 발견되었다. 토기의 겉은 템페라로 Ast.i.1과 2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패턴으로 칠했다. 잘 깎은 나무 오리 조각도 발견되었다. Ast.i.1에서 발견된 것과 정확히 동일한 양식과 솜씨였다.

i.3.012(P.89)
i.3.014(Pl.90)

 

[다음에 계속]

 

스타인의 투루판 아스타나 무덤 발굴 기록 3.

이하는 헝가리계 영국인 탐험가 아우렐 스타인(Sir Marc Aurel Stein, 1862~1943)의 투루판 아스타나 고대무덤 발굴 기록으로 그의 저서 Innermost Asia(Oxford, 1928)에 수록되어 있다. 608년, 624년 기년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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