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성과 씨 본문
성姓은 혈연을 표시한 것이다. 한자 성姓에 여성[女]이 있는 것은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았던 모계사회의 전통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씨氏는 “신지神祗”로, 본디 천지신명, 즉 하늘과 땅의 여러 신들을 의미한다. 이후 동일 신(앙)을 가진 집단의 수장을 가리키는 존칭이 되었고 다시 각 집단을 대표하는 유력자의 자칭이 되었다. 씨는 ①자신이 분봉받은 나라의 명칭, ②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의 명칭, ③관직 명칭, ④직업 명칭, ⑤현재 거주지, ⑥왕 또는 제후와의 혈연관계를 의미하는 호칭, ⑦조상 중 특정인의 자字 등에서 기원했고, 이 씨를 가족 구성원 전체가 공유함으로써 성姓처럼 사용하게 되었다.(따라서 과거 어느 시점에는 봉지나 관직이 바뀌면 씨도 이를 따랐다. 즉 동일 가족이어도 다른 씨를 썼다.)
고염무의 일지록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요관姚寬은 서계총어西溪叢語에서 “성씨姓氏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는 원화성찬元和姓纂만큼 풍성한 것이 없다. 남북조南北朝는 관직으로 서로 높이고 (이것이) 당대까지 이어지면서 최崔씨・노盧씨・이李씨・정鄭씨는 얽히고설켜 비루하게 되었다. 만일 성현聖賢을 근본으로 삼자면 규성嬀姓・자성子姓・희성姬姓・강성姜姓의 부류는 각기 지파와 항렬[分次]에 따라 계보가 있어 춘추시대까지 기록되어 세본世本으로 순황荀況이 족보[譜]를 만들고 두예杜預는 공자보公子譜를 법으로 삼아 당우唐虞 삼대三代 여러 나라 제후로 책을 이룰 수 있었다. 이는 태사공太史公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바다.”라고 했다. 나는 일전에 경經과 전傳 및 여러 서적으로 순차를 매기고자 했다. 먼저 황제黃帝의 자손들과 여기서 성姓을 얻은 자 12인, 다음은 삼대三代 이전에 나라[國]를 받아 씨氏를 받은 자와 이후 이를 성姓으로 삼은 자, 다음은 전국戰國 이후 전기傳記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오늘날 사람들이 성姓이라 부르는 것이다. 다음은 삼국三國 남북조南北朝 이후 여러 사적에서 볼 수 있는 것, 또 다음으로 사적에 보이는 대북代北[북위北魏] 복성複姓과 요금원遼金元의 성姓이다. 그리고 고증할 수 없는 것을 따로 한 질로 엮었다. 이것은 구조화하여 [網之] 구조 안에 담으면 [在網] 계통을 갖춰 어지러워지지 않을 수 있다. 망족望族의 규율[五音]이 뒤죽박죽이면 모두 소용없으니 (이야말로) 근본을 반추하여 씨족을 나누는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姚寬西溪叢語曰, 姓氏之學姬, 莫盛於元和姓纂. 自南北朝以官職相高, 沿至於唐, 崔盧李鄭, 糾紛可鄙. 若以聖賢所本, 如嬀姓子姓姬姓姜姓之類, 各分次其所從來, 以及春秋所紀, 用世本荀況譜, 杜預公子譜爲法, 則唐虞三代列國諸侯, 俱可成書. 此似太史公欲爲而未就者耳. 愚嘗欲以經傳諸書次之, 首列黃帝之子, 得姓者十二人, 次則三代以上之得國受氏, 而後人因以爲姓者, 次則戰國以下之見於傳記, 而今人通謂之姓者, 次則三國南北朝以下之見于史者, 又次則代北複姓遼金元姓之見于史者. 而無所考者, 別爲一帙. 此則若網之在綱, 有條而不紊, 而望族五音之紛紛者, 皆無所用, 豈非反本類族之一大事哉?
한나라 유향劉向이 세본世本 2권을 지었다고 하나 그 책은 전하지 않는다. 오늘날 좌전주소左傳註疏에 이를 인용한 것이 많지만 이 역시 오류가 없지 않다.
劉向撰世本二卷, 其書不傳. 今左傳註疏多本之, 然亦未必無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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