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일제강점기 해구신 광고 본문
화태청관영 해구신 신품 도착
정기를 보충하고 정력 강장에 신비로운 효과를 가진 전 세계에 유일한 고귀한 실탄 진품이외다. 구해서 복용하길 원하시는 분은 설명서를 요청하시면 무료 증정합니다. / 과연 백발백중 증명서
부산부 초량정 / 합자회사 대양무역사 大洋貿易社 / 전화 1-182번 / 계좌 부산7922번
[매일신보 1938.11.12.]
해구신이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정의했다.
해구-신(海狗腎): 물개의 음경과 고환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보신 강정제로 쓴다.
해구신은 오래 전부터 강정제로 유명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로칠상五勞七傷, 신기가 쇠약해지거나 음위에 힘이 없거나 얼굴이 흙빛에 정기가 차거나, 남성의 정력이 쇠약해졌거나, 지나친 성생활로 성기가 피로해져 수척해진 것을 주관한다. 또한 귀신과 여우에 홀렸거나 꿈에서 귀신과 교접하거나 사기에 들었을 때 양기를 돕고 허리와 무릅에 온기를 가져다 준다고 한다. 본초에 따르면 해구신은 신라新羅의 물건이라고 했으니, 뿌리 깊은 전통 보양제라고 할 수 있다. 또 속방에는 평해에서 나는 데 꽤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조선시대 배로 어디 물개 잡기가 쉬웠겠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약으로 알려졌으나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목적하는 바도, 재료를 취득하는 바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긴 그런지라 주로 길거리 의약품으로 거래되었다. 마치 오늘날 터미널 화장실에 있는 비아그라 광고처럼. 약장수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차력을 보여주거나 하며 약을 팔았다.
중일전쟁 이후 물자 부족에 시달리자 물개를 잡아 가죽을 쓰려했다. 여기에 해구신은 덤이었다. 신문은 “일석사조一石四鳥”라며 거들었다. 독도 강치가 씨가 마른 것도 이때일 것이다.
“어부 울리던 해중 폭군! 해구신포획을 계획”, “고기는 약재로, 가죽은 피혁으로 이용”
함경남도 연안에는 예로부터 물개가 많아 그로 인한 그물과 어족의 피해가 막심했는데, 시국이 장기화함에 따라 대용품이 속속 등장하게 되는 때를 맞이하여 함경남도의 물개가 데뷔하게 되어 애용품 시대에 또 새로운 대용품이 출연하게 되었다. 함경남도 연안 어업자와 어장 소유자들은 해마다 근해로 모이는 물개 퇴치에 대한 방책을 수산과 당국에 요망하고 있었는데, 수산과 당국에서는 고래, 상어의 가죽이 대용품으로 진출하는 때인 만큼 피해가 많은 물개를 잡아 그 가죽을 가방, 구두의 원료로 제공할 목적하에 조만간 적당한 후보자를 선택하여 물개잡이 허가를 줄 터라고 한다. 수산과 강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함남 연안에서 잡을 수 있는 물개의 수는 매년 오천 마리 이상일 듯하다는 데 현재 물개 가죽 가방이 소중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강정제로 일반이 진중하던 해구신도 생산할 수 있는 만큼 함남수산당국에서는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동아일보 1939.07.16.)
사진의 광고를 보면 당시 일본령이었던 사할린 남부, 화태華太(가라후토)에서는 지방 정부 주도하에 물개잡이가 성업 중이었던 모양이다. 해구신을 신문지면에 떡하니 게재해 광고를 한 것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광복 이후 해구신은 다시 은밀한 영역으로 들어갔다. 4.19. 이후 연재한 박계주의 장편소설 “장미와 태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자기 몸을 비쳐 본다. 턱을 만져보고, 뺨을 만져보고... 비대한 몸이요, 유들유들한 얼굴이건만 뭇 젊은 여자가 자기에게만 반한 것 같아서 어깨가 스스로 추켜지며 과대망상을 무한정 펼쳐본다. 나이 오십이 넘었건만 이렇듯 몸이 좋은 것은 그놈의 해구신(海狗腎)의 덕택만은 아니리라.
김경근은 그러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부산 피난 때 어느 신문 가쉽란에 「국회의원과 해구신」이란 제목 아래 돈을 흥청거리며 물 쓰듯 하는 권력당의 국회의원들이 고가로 사들인 해구신을 곳고난 뒤에 알고 보니 해구신이 아니라 개장국 집의 것을 모아다가 판 것에 속았다는 기사를 생각해 내고 쓴웃음을 웃었다. 자기도 그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오는 김경근은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처첩 사이를 오갔던 이다. 당시로서 제법 있을 법한 일이었기에 소설에도 나왔을 것이다. 총무처에서 1970년 입수한 이승만 대통령 유품 350여 점 가운데도 “녹용 해구신”이 있었으니 말이다.(조선일보 1970.02.04.) 이승만대통령기념관이 건립되면 꼭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해구신은 약재로 상당수가 밀수품이었지만, 공식적으로 수입허가를 받고 수입되기도 했다. 1981년 TV, VTR, 가스레인지 등 특소세를 인하할 때, 해구신은 로열젤리와 함께 특소세 부과 물품으로 지정되었다. 한동안 수입이 급증했고(말린 누에와 함께 자양강장제 수입액 1등), 1993년에는 ‘해구신 드링크’가 실제 상표등록을 마치고 판매될 뻔했다가 보사부가 긴급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정력에 좋다면 아무거나 다 먹는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여기에 동물보호 운동까지 더해져 요즘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아무쪼록 물개들이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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