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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장 폭발 사건, 범인은?

자불어 2024. 2. 1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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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장 / 2024.2.13. ⓒ 자불어

서대문구 영천시장, 서울 도심의 대표 시장이다. 사직터널 너머 금천시장, 통인시장도 유명했으나 두 군데는 이미 시장의 기능을 상실하고 먹거리 타운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영천시장에는 초입의 야채, 채소가게를 필두로 닭강정, 건어물, 어물전, 잡화점, 뎀뿌라 어묵, 꽈배기, 떡볶이, 전집, 김치, 반찬가게 등등 우리가 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또한 최근 백 년 가게로 지정된 순댓국집, 베트남 부부가 하는 쌀국숫집을 비롯해 줄 서서 먹는 맛집도 여럿 있다. 그 일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1984년 7월 6일 아침 8시 10분 분주히 장사를 준비할 시간, 영천기름집(주인 박■■, 46) 점포 안에서 가게에 놀러 왔던 권■■ 씨(36, 용산구)가 진열대 위에서 쇼핑백을 발견했다. 한 시간 전 기름집 주인 박씨가 가게 앞에 떨어져 있던 걸 주워 놓은 것이었다. 기름집 진열장에 안 어울리는 쇼핑백이 궁금했던 권씨는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았다. 쇼핑백 안에는 종이상자 하나가 붉은색 포장끈에 묶여 있었다. 권씨는 상자를 꺼내 가위로 포장끈을 잘랐다. 그러자, 

"펑!" 

하는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사제폭발물이었다. 권씨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지고 기름집주인 박씨와 잠깐 놀러 왔던 맞은편 국밥집주인 임■■씨(49) 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박씨에 따르면 이 쇼핑백 안에는 종이상자와 함께 예비군 훈련용 운동화가 함께 들어있었다고 한다. 

사건 현장(조선일보 1984. 7. 7.)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폭발물은 플라스틱 통에 9V 건전지 3개와 스프링, 볼트, 너트 등을 이용해 만든 부비트랩형 폭발물로 부품은 모두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또한 폭발물에 대한 간단한 지식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것이라고 한다. 경찰은 사회 혼란을 야기하기 위한 불순분자의 책동으로 추정하는 한편 기름집 사장 내외가 채무 관계로 주변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원한 관계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기름집 사장 박씨의 채무관계는 복잡했다. 5년 전, 박씨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술집 여종업원 2명과 남자 1명 등 총 3명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집주인인 박씨는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40일 만에 유족들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건네고 풀려났다. 이때 박씨는 모씨로부터 8백만 원을 빌려 합의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를 갚지 못해 이 즈음 6천만 원 상당의 집을 압류당했다. 이밖에도 4년 전 기름집을 인수하면서 빌린 천만 원 등 주변 10여 명으로부터 빌린 돈이 모두 5천2백여 만원에 달했다.

경찰은 채무관계에 주목했다. 한 수사관은 “대공용의점을 배제하고 보면 범행동기는 원한으로 압축되므로 채권자의 소행이건 다른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건 수사범위는 축소되며 따라서 의외로 빨리 해결될 수도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범인의 윤곽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자 박씨는 경찰들의 조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서대문경찰서는 바로 전해부터 시행된 ‘고문방지법’을 탓했다. 서대문경찰서 간부는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기름집주인이 입을 열지 않고 막상 ‘올라탈 만한(=고문으로 불게 할 수 있는)’ 형사가 있어도 올라타지 못해 해결이 늦어지고 있다”라고 했으며, 서대문경찰서 서장(최■■)조차도 “옛날처럼 피해자고 뭐고 간에 실력 있는 형사 붙여 물리적인 힘을 쓰면 수사는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 사이 중구 일대에서 암달러상 살해사건이 일어나자 세간의 시선은 그리로 쏠렸다. 그러자 서대문경찰서는 한숨 돌렸다. 한 수사관은 “남대문(경찰)서나 중부(경찰)서엔 안된 얘기지만 그나마 큰 사건이 터져 우리를 살려주었다”고 했다고.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졌고 경찰은 7월 26일 제보자에게 3백만 원의 보상금을 내걸었다. 

사건 발생 두 달이 가까워질 무렵인 8월 28일 경찰은 폭발 사건의 용의자로 근처에서 커튼 집을 운영하는 박○○ 씨(61, 동대문구 청량리동)를 구속했다. 박○○의 처, 김○○은 83년 1월 기름집 사장 박■■씨의 인감을 도용해 670만 원의 사채를 얻어 썼다가 고발당해 구속되었다. 둘 사이엔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사건 발생 약 10일 전인 6월 28일에는 박■■씨가 박○○씨를 찾아가 “7월 말까지 갚지 않으면 제소해 모두 구속시키겠다”며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또한 커튼집에서 쇼핑백을 봤다는 용의자도 등장했다. 경찰은 53일 동안 알리바이를 조작,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 용의자를 강압수사 없이 증거를 캐내 사건을 해결했다며 ‘이례적인 인권수사’로 자부했다. 경찰의 수사를 바탕으로 검찰은 박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듬해 2월 27일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을 인정할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어떠한 증거도 확실히 박피고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거짓말탐지기의 반응 역시 피고인에게 5시간밖에 잠을 재우지 않아 혈압이 2백까지 올라가는 등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했다. 과학수사, 인권수사의 표본이라며 자화자찬했던 경찰은 침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박씨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구치소를 나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형사소송법 331조 “검찰에 의해 10년 이상이 구형된 사람은 무죄가 되더라도 구속영장의 효력이 정지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형사소송법 331조는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제331조(무죄등 선고와 구속영장의 효력) 무죄, 면소, 형의 면제, 형의 선고유예, 형의 집행유예, 공소기각 또는 벌금이나 과료를 과하는 판결이 선고된 때에는 구속영장은 효력을 잃는다."

6월 25일 2심 재판부 역시 박씨에게 무죄를 언도했다. 1, 2심 모두 승소한 박씨는 보석을 신청했고 사건 발생 1년, 구속된 지 10개월 여만인 7월 3일 보석을 허가받아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1986년 11월 26일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무죄를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잠을 재우지 않고 실시한 거짓말탐지기 반응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건 발생 50일이 지난 뒤 범인의 옷차림을 식별한 목격자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고 보았다. 

결국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이 되었고, 사건이 터졌을 때 소란스러웠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도 조용한 마무리였다. 

영천시장은 3호선 독립문역에서 신호등만 건너면 된다.(영천시장 후문) 살 것도 먹을 것도 많으니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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