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유사역사학의 산물: 고종독살설, 제국익문사 본문
고종황제의 한 후손은 오늘 고종 독살설을 주장하며 고종 독살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몰상식"하다고 했다. (요즘 너무 바빠서 포스팅할 시간이 없는데, 글쓰기를 자극한다.) 그럼 여기서 그의 이야기를 확인하며 과연 상식이 결여된 자는 누구인가 확인해보고자 한다. 앞서 고종의 죽음을 지켜본 의사들의 증언을 포스팅한 바 있다.(여기에 참여한 의사 중 1인은 조선인으로 그는 전직 의친왕 이강이 신임했던 자다.) 그들에 따르면 고종은 전형적인 뇌출혈 증상이었다.
그럼에도 고종의 독살설이 회자되는 것은 첫 번째로는 일제의 잔악함을 강조하고자, 또는 그들이라면 응당 그랬으려니 하는 확신과 두 번째로는 여기에 더해 윤치호 일기(그가 들은 이야기)가 그 추측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는 황족 이강과 이준용 일기에 나온다 운운하지만, 그 일기는 표지 조차 공개된 적 없기에 존재 자체도 믿기 어렵다. 또한 윤치호의 이야기에 한점 덧붙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이상의 내용은 없는 모양이다. 윤치호는 일기에서 의친왕 망명 사건을 듣고 그런 인간 데려가 봐야 도움이 될 것 없을 거라고도 일기에 남긴 바 있다.(전자가 소문을 옮겨적은 것이라면 후자는 자신의 의견이다.)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엉성한 지를 보여주는 예가 있어 여기서 비판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종 증조부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둘째 황자 의친왕 조부님과 조부님의 미국 대학 동기들인 하란사 여사, 우사 김규식 박사와 파리강화회의로 특사로 비밀 파견 준비 중이었습니다. 파리엔 이미 황실종친인 이관용과 황실직속 정보기관 제국익문사 요원 황기환(드라마 미스터선샤인 유진초이(이병헌 분)의 실제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전 준비 중 발각되어 의친왕, 하란사 여사는 파리로 향하지 못했지만 김규식이 성공적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여 세계에 일제통치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주장이다.
1. 하란사는 애당초 파리로 갈 예정이 없었다. 하란사는 3.1.운동 직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북경으로 망명했다. 그녀가 파리로 갈 요량이었다면, 북경으로 향할 이유가 없었다. 이는 당시 북경에 체재했던 독립운동가의 기록에도 나온다.
2. 김규식은 신한청년단을 대표해 파리로 향했다. 신한청년단은 애당초 "공화주의"를 표방했던 단체로 고종이나 의친왕 같은 부류와 엮일 일이 일도 없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신한청년단을 이끌던 여운형이 김규식을 초청, 파견했고, 김규식은 박용만 등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취하며 움직였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떻게든 로어노크 대학 동문으로 엮어보려 한다. 로어노크 대학에서 주색과 쇼핑으로 방탕한 삶을 살던 의친왕과 달리 김규식은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3등으로 졸업했다. 이런 식의 근거 없는 정보 양산이 문제가 되는 것은 조상의 포장을 위해 거짓으로 타인의 업적을 가로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김규식을 파리로 보낸 것은 일제로부터 대우받은 "대한황실"이 아니라 김규식 본인의 의지, 그리고 신한청년단과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3. 황기환은 “미스터선샤인 유진초이의 실존인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인물 설정에 모티브를 제공해 주었을 뿐 시대나 행적이 전혀 다른 사람이다. 미군에 입대했으나 1차 세계대전 때 일이고,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갔기에 파리위원부에서 외교에 주력했지 대한제국이나 식민지 조선에서의 활동은 전무하다. 황기환은 고종이나 이강과도 만날 일이 없었다. 황기환이 제국익문사 요원이라는 건 전혀 근거가 없다. 드라마에 취해, 그리고 의친왕의 업적 꾸미기에 급급한 나머지 마구 엮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4. "황실종친 이관용"이라고 했지만, 이관용은 선조의 9남 경창군의 후손이다. 물론 그의 큰아버지 이을경(후의 이재완)이 흥완군(흥선대원군의 형)의 양자로 가면서 가까워지긴 했다.(정작 본인은 족보상으로는 먼 친척) 십분 양보해서 황실종친이라고 치자. 또 그가 그리 대접받았을지 모르겠으나, 이관용의 삶에선 황실출신이란 자의식을 전혀 느낄 수 없다.
5. 마지막으로, 김규식이 파리로 가자 "황실종친 이관용과 제국익문사요원 황기환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김규식은 1919년 3월 13일 파리에 도착했다. 이관용이 파리에 온 것은 5월 18일, 그리고 황기환은 6월 3일에 도착했다. 이관용과 황기환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김규식 이후다. '황기환은 유진초이', '유진초이는 제국익문사', '김규식, 이관용, 황기환(파리위원부)은 모두 제국익문사'란 뇌피셜을 돌린 모양인데, 그러다 보니 설명은 거짓, 사실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제국익문사의 활동”은 실체도 증거도 없는 허구로, 소설이나 TV 드라마에 불과하다. (역사는 사극을 만들 수 있지만, 사극으로 역사를 만들어선 안된다.)
상대 주장을 "몰상식"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은 얼마나 상식에 부합하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몰상식"이란 비판을 넘어, "몰염치", "몰역사성"이란 말까지 되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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