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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가 사람들

전 의친왕 이강이 김규식을 찾아간 이야기

자불어 2025. 3. 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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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을 숭모하는 이들은 광복 이후, 독립지사들이 의친왕에게 찾아와 인사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김구 등 임정 인사들이 귀국하자마자 바로 의친왕을 예방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세종시는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 학술포럼 자료집(2024.6.)에서 이를 활자화했다. 그러나 임정인사들은 그날 숙소에서 기다리던 이승만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신문에 기록된 바, 귀국 당일 예방 설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전이라면 그 무리에 거짓말쟁이가 있는 거다.)

여기에 더해 해방 정국 김규식의 비서로  일했던 송남헌의 관련 기록이 있어 추가한다. 한 단어도 빼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언젠가는 이강 공이 삼청장으로 김 박사를 방문했다. 이때 보료 위에 앉아 있던 김 박사는 얼른 보료에서 내려와 이강 공을 맞이했다. 그만큼 이강 공을 예우한 셈이었는데, 이강 공은 김 박사가 미국 로녹에 유학하고 있던 시절 재정적으로 김 박사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이강 공은 김 박사뿐만 아니라 당시 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국인 청년들에게도 재정적으로 많은 지원을 했는데, 이는 조선왕실이 인재양성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유학시절 의친왕의 재정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김 박사는 의친왕을 자주 수행했고, 이 바람에 김 박사는 한때 성적이 많이 떨어졌던 것 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 관계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우사연구회 엮음, 심지연 지음, 송남헌 회고록, 김규식과 함께한 길(서울: 한울, 2000), p.29.]

김규식은 해방 직후 고위 인사였다. 송남헌은 보료에서 내려와 이강 공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이강 공을 예우해 주었다 하고 그 연유를 이하에 설명했다. 그리고 이강이 미국 체류 시절, 유학생에게 재정적 지원을 했다며 호의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 조차 김규식이 이강을 예방했다는 이야기는 일절 없다. 즉 이강이 김구, 김규식, 이승만을 찾아다녔지 그들이 이강을 찾진 않았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이강의 사적을 미화하는 이들은 어찌되었든 임정인사와 이강을 엮고자 노력한다. "한독당"의 고문이 되었다는 주장이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한독당 고문을 한 사람은 (발음만) 동명이인 이강이며 다른 이강이 고문에 취임한 것은 해방 정국도 아닌 한참 뒤의 일이었다. 또한 이 무렵이 되면 김규식은 김구와 노선을 달리해 좌우합작운동에 매진한다. 역사공부는 제대로 안하고 "스토리" 만들기에 열심히였던 까닭에 어설픈 주작만 늘어 놓은 셈이다.

김규식(1920년) /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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