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처우에 대한 분노, 이왕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찼던 전직 의친왕 이강 공은 전협 등 대동단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로 망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 안동역에서 체포되면서 실패했다. 서울로 잡혀온 그는 어떻게든 납치로 분식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노력했고, 그 덕택에 일제는 뜻했던 대로, 즉 왕공족은 건드리지 않고 독립지사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후 이강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으로 끌려갔다고 후손들은 주장하지만, 이강이 일본에 가서 장기 체재한 건 한참 뒤인 1930년대이며, 또한 끌려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아마도 일본은 이 좌충우돌의 왕공족을 회유하기로 마음먹었던 듯싶다. 그래서 지위와 돈, X 등, 그가 갈망하는 것을 일정 부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병합 직후 부여했던 명예직인 일본제국 육군중장을 실직으로 바꿔 용산 조선군 사령부에 자리를 마련해 출퇴근하게 했다. 조선인 가운데 중장 계급에 오른자는 세 사람, 의친왕, 영친왕, 홍사익이다. 근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강의 승진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문서가 아래 문서다. 1928년(쇼와3년) 10월 19일 조선군참모장이 일본 육군차관에게 보낸 문서로 내용은 이강공을 육군대장으로 승진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래 인용에서 언급한 왕공가궤범은 1926년 제정된 것으로 제59조는 " 왕ㆍ왕세자ㆍ왕세손ㆍ공은 만 18세에 달한 후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육군 또는 해군의 무관에 임한다."다. 즉, 59조에 따라 육군 또는 해군의 무관에 임명하지만 특별한 경우로 판단해 이강은 현재 계급(중장)에서 더 진급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52호 전보역 10월 19일 오전 4시 56분 / 오전 7시 15분
육군차관 앞 발신자 조선군참모장
조41
제테(テ)*군 사령관으로부터 이야기가 있었던 이강공 전하의 건에 대하여, 어젯밤 총독과도 협의한 결과, 이 시기에 대장으로 진급시키는 것은 불가하다는 의견으로 일치하였음을 상신합니다. 사정을 고려하여, 동공은 「왕공가 규범」 제59조의 특별한 사유가 있는 자로서 취급하고, 장래에도 본관(本官)에 임명함이 없이, 여전히 현재의 대우에 머물게 하는 것이 어떨지, 귀하의 의견을 알고자 합니다. 총독 출발 기일과의 관계도 있으므로, 21일 중으로 회답을 바랍니다.
* 'テ(테)'는 오십음도에서 19번째 글자로 즉 나진에 주둔하고 있던 제19사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19사단은 경성주둔 20사단과 함께 조선군을 구성했고, 발신자 조선군참모장이 20사단 소속이었을 터, 이 문서는 조선군 내부에서 논의를 마친 뒤 총독과 협의 후 일본의 육군성(육군차관)에게 보낸 것이다.

'이왕가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2차 독립선언서(대동단선언), 전협과 최익환을 기리며 (7) | 2025.08.15 |
|---|---|
| 황족 유일 독립운동가 의친왕 이강, 사이토 총독에게 애원하다. (6) | 2025.08.13 |
| 히로시마 원폭 전몰자 이우 공 추도사 (8) | 2025.08.10 |
| 일본군 20사단 육군 중장 의친왕 이강, 육군대연습 참가 (3) | 2025.08.09 |
| 메이지 천황을 흠모한 황실 독립 운동가 의친왕 이강의 편지(수신자: 데라우치 총독) (4) | 2025.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