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대동단 독립선언서는 명의 도용이라 했던 의친왕 이강

자불어 2025. 11. 23. 15:02

의친왕은 왕공족으로 일제 협력자였다. 이미 국권피탈 전부터 품행이 온전치 못해 주변으로부터 지탄 받았다. 이미 미국 유학시절 부터 낭비벽이 심해 미국 은행에 피소된 바 있으며 짧은 일본 망명시절에조차 일본인 여성과 관계를 가져 자녀를 얻어올 정도로 색에도 탐닉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망명사건" 하나로 마치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황실인사"로 포장되고 있으나, 그 역시도 사실을 들여다 보면 착찹하기 짝이 없다. 대동단 독립선언서 역시 그 중 하나다.  

대동단 독립선언서, 즉 11.28. 독립선언서는 전협, 최익환이 기초해 작성한 것으로 서명본이 아닌 등사본이다. 전협과 최익환은 구황실의 재건을 통해 독립을 꿈꾸었고, 이에 의친왕 망명을 기획한다. 그러나 망명은 의친왕이 자신을 부양할 충분한 자금은 있냐? 측실을 데리고 가야 한다며 미적대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의친왕의 부재를 뒤늦게야 확인하고 국경 안팎으로 촘촘히 펼친 일제의 그물망에 걸리고 말았다. 사실 의친왕에게 망명은 이왕가에 대한 반감, 호색 환락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유흥 비용 부족 등으로 촉발된 일탈에 불과했다.(의친왕 이강은 이 이야기를 일본 경찰에게 장황하게 늘어 놓았으며, 새로 부임한 총독 사이토에게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럼 이하 일제 경찰의 심문 기록을 보자.

일제 경찰이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를 묻자 최익환은 이렇게 답했다. 

문) 「선언서」, 기타는 누가 起稿하였는가.
답) 「선언서」 2통, 「진정서」 1통, 「방략方略 및 기관機關」 1통, 「일본 국민에게 고告함」 1통, 「관망청담觀望淸談하는 제씨諸氏에게 고함」 1통 등 6통은 내가 기고起稿하였다.(이때 證 제22호·證 제23호·證 제24호·證 제27호·證 제29호·證 제30호를 전시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大同團事件Ⅰ 警務總監部·警察署 調書(日文)  崔益煥 訊問調書(第2回)]

최익환은 자신이 썼다고 밝혔다. 그럼 제일 첫 줄 앞에 있는 의친왕은 뭐라고 답했을까?

문) 제2회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니 증인에게 이름을 내도록 하라는 교섭이 있었던 일은 없는가.
답) 없었으나, 내 승낙없이 내 이름을 늘어놓은 선언서를 낼 계획을 하는 자가 있다는 것으로, 내가 이곳을 출발하기 전 발표할 계획으로 되어 있던 것을 출발 전에 발표하면 떠들어댈 우려가 있다 하여 내가 출발하기까지 강석룡姜錫龍이 제지했다는 것을 김춘기金春基로부터 들어 안 일이 있다. 그때 나는 자신이 이름을 내는 것을 승낙하지 않은 것이니 그러한 것은 아무리 발표해도 상관없으므로 「내려면 내라고 하라」고 말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내 이름을 낸다고 하면 내가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나를 위협할 작정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문) 그때 그 선언서의 문의文意 및 기안자에 대한 것은 듣지 못했는가.
답) 듣지 못하였다.(이때 大正 8년 刑 제4429호의 증거품 領 제1404호의 3을 보이다)
문) 증인은 이 선언서를 본 일이 없는가.
답) 지금 처음 본 것으로, 전에는 본 일이 없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大同團事件Ⅰ檢察 調書(日文)  李堈 調書]

의친왕은 모두 그자들이 한 짓으로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혹자는 붙잡혔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겠냐고 한다. 최익환은 붙잡혀서 본인의 소행이라고 했고, 의친왕은 본인은 알지못하는 일로 그들이 했다고 말한다. 전협, 최익환 등은 이후 재판에서 중형에 언도 되었고, 전협은 산송장이 되어 풀려나와 가석방 며칠만에 순국했다. 만일 이 망명을 의친왕이 기획했다면, 그는 리더로서 아랫 사람을 탓하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사람이었음에 틀림 없다. (요즘 재판 받는 누구를 보는 듯하다.) "대가리는 살아야 한다"는 왕당파가 아니라면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고초는 모른척하며 잡혔으니 "어쩔 수 없다" 말하는가. 

오늘도 의친왕 이강의 후손들은 거짓 선전에 열을 올린다. 의친왕은 그저 자유분방한 욕망에 충실한 사내에 불과했다. 이런 사람에 호감을 갖고 말고는 개인의 취향이니 뭐라 할 바 못되지만, 역사왜곡을 일삼고 사실을 식민사학 운운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독립지사로 둔갑시키는 건 다른 독립지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바로 그들이야말로 일제강점기에는 왕공족으로 호사를 누리고 해방 이후에는 그 호사를 독립운동인양 둔갑, 포장하는 식민 추종자들이다.  

 

무엇이 의친왕의 진짜 서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