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신자료) 의친왕 이강, 공위를 물려준 이유? 여자 문제!

자불어 2026. 8. 18. 04:06

의친왕 이강의 후손들은 망명 시도 사건이 실패한 이후, 이강공이 여행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일본으로 압송당할 뻔했으며, 결국에는 공위를 빼앗기고 은거를 강제 당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여행의 자유를 박탈당하기는 커녕 온양, 배천, 하코네, 벳푸 등 조선과 일본의 유명 온천을 두루 찾았다. 한 술 더 떠서 가는 곳마다 여성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이를 후손들은 "압송"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과연 이강은 왜 공위를 내려놓은 것일까. 이강이 공위를 아들 이건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은거를 둘러싼 전후 조치를 알 수 있는 문서를 확인했다. 이 역시 지난번 신 자료를 알려주신 분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다음 자료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보관하고 있던 경비관계철(이강공비 양 전하 관계)에 편철된 문서 중 하나로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일단 내용 일부를 미리 언급하면, 앞서 소개했던(본 블로그 바로 앞 포스팅 참조) 러시아 여성 '니나'의 민원 제기도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의친왕 이강은 품행문제로 은거를 압박 받자 일본 관광지를 오가며 궁내성 또는 총독부 관료들을 피해다녔다. (여기서 그가 공위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여행 자유의 박탈이란 건 애당초 상상의 산물이었다.)  문서의 원문을 보면 아래와 같다. 


경경비(京警秘) 제834호
소화 5년(1930년) 5월 27일
경기도 경찰부장
경무국장 귀하  

이강공(李堈公) 전하 은거(隱居) 문제 및 유산 분배 문제에 관한 건 (제28보)

 
공(公) 전하 은거 문제의 발단은, 앞서 전하와 관계가 있었던 "니나(ニーナ)"가 전부터 전하로부터 약속받았던 위자료 1만 원의 지급을 요구하였으나 공가(公家, 이강공 저택 측)에서 이를 거절함에 따라, 결국 본인이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지사에게 진정(陳情)을 하기에 이르렀던바, 궁내성(宮內省)에서도 전하의 행동을 우려하여 내사(內査)한 결과 이미 보고한 바와 같이 여러 부인 관계가 있음이 명백해졌고, 더욱이 제국호텔 매점 여성 고바야시 아야코(小林アヤ子)와의 관계가 신문 지상에 공표되기에 이르는 등의 일이 있었던 결과, 마침내 궁내성에서도 전하의 은거 문제를 고려하기에 이른 것으로서, 그 결과 앞서 고다마(児玉) 정무총감(政務總監)으로부터 공 전하에 대하여 "건(健) 공자(公子)가 작년에 성년에 달하셨으나 규정상 전하의 경칭(敬稱)을 받들 수 없기 때문에 궁중의 대우도 달라져 심히 유감이니 이 기회에 은거하시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진언(進言)한 바 있었다고 하나, 전하께서는 승낙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내지(內地, 일본 본토)로 여행을 떠나신 지 7개월에 이르도록 귀선(歸鮮, 조선으로 귀환)하실 기미가 없어 해결에 이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에 관하여 전하 경위(警衛)를 위해 출장 중인 이타이(板井) 순사로부터 아래와 같은 통보 보고가 있었기에, 상세한 내용은 불명하나 일단 보고함.

기(記)
전하께서는 이번 도쿄행(東上)을 계기로 정무총감과 대면하시어 유산 문제, 은거 문제에 관하여 간담(懇談)이 있으셨는데, 총감으로부터 세키야(関屋) 궁내차관에게도 잘 알선·진력(盡力)하도록 한 결과, 아래 요항(要項)에 의해 전하의 재정 문제를 해결해 드리고, 전하께서는 마침내 은거하시겠다는 뜻을 승낙하실 예정으로, 이에 관계된 서류는 이미 해당 부서에 제출되었으며, 왕공족심의회(王公族審議會)에서 심의한 후 칙재(勅裁)를 거쳐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라고 함.
또한 전하께서는 종래 군사령부 출근을 유독 꺼려하셨는데, 위 발표와 동시에 군적(軍籍)에서도 물러나시게 될 것이며, 또한 부무관(附武官)도 폐지될 것이라고 함.

요항(要項)
一. 이왕(李王) 전하 유산 중 300만 원을 공가(公家)에서 분배받는 건은 의결이 정리되지 못함.
一. 공 전하 생존 중, 이왕가(李王家)로부터 매년 금 12만 원의 경비를 지급하되, 다만 그중 2만 원은 비전하(妃殿下) 용도의 비용으로 지급함. 또한 종래에는 친용금(親用金)으로 매월 2,800원을 소비하시는 것 외에, 여행 및 기타 필요한 경우의 비용은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하셨으나, 앞으로는 절대로 위 금액의 범위 내에서 정리(整理)하실 것.
一. 공 전하는 이왕가로부터 30만 원을 받아 수인당(修仁堂) 김흥인(金興仁), 제5공자 수길(壽吉), 제6공자 곤(錕), 수덕당(修德堂) 이선춘(李善春), 제1공녀 연(鍊), 제2공녀 금(錦) 및 첩 양용희(梁龍喜), 김금옥(金今玉) 등의 정리비(整理費)에 충당할 것.
一. 공 전하는 벳푸(別府)에 영주(永住)하실 뜻으로 이왕가로부터 3만 5천 원을 받아 가옥을 건축하실 것.
一. 전하의 경칭 및 호칭은 이후에도 변함이 없음.
一. 건(健) 공자 상속 후의 예산은 어장(漁場) 수입 및 기타로써 차례로 충당할 것.
가시이(香椎)와의 현 계약은 이미 만기가 되어 새로이 계약하실 예정으로, 현재보다도 7~8만 원의 증수(增收)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함.


문서 번호는 경경비 제834호로 1930년 5월 27일 작성된 것이다. 발신자는 경기도경찰부장이며, 수신자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다. 문서 첫 페이지 상단에는 "극비"라는 원형인이 있다.(조선총독부조차 이강의 추문을 감추고 싶어 했다. 딴에는 황국의 모범이 되어야 할 왕공족이 이런 쓰레기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웠을 테니 말이다.) 이 문서는 경무국을 거쳐 총독에게까지 보고되었다. ‘극비’ 좌측으로 정무총감, 총독으로 이어진 공람 서명 주기가 있는데,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858~1936)의 친필 서명 '實' 이 보인다.(아래 사진 참조) 정무총감 란은 서명 없이 빗금만 그었는데, 이는 이강공과 은거 절차를 협의하러 일본에 출장을 가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여성에 호텔 점원 직원까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의친왕 이강의 엽색행각은 그칠 줄 몰랐다. 게다가 순종의 유산을 받아내겠다고 생떼 부리는 것이나 공위를 내려놓기 싫어 도망 다닌 것까지. 어느 하나 한심하기 짝이 없이다. 아들 이건을 냉대했던 것 또한 자신의 공위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한 배우의 철없는 집안 자랑에 다들 난리치지만 정작 조직적으로 집안이 나서서 역사를 왜곡, 독립운동가로 분식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황족이라며 떠받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한심할 다름이다.  


  [문서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