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사내정의 (2)
일상 역사
유학은 일제강점기에도 그 생명력을 이어나갔다. 조선 500년의 통치 이념이었으나 유학의 여러 덕목은 식민통치자들에게도 유효했다. 충성의 대상, 즉 임금만 바꾸면 이보다 좋은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유학은 사무라이의 교양이기도 했기에 그들에게도 익숙했다. 1915년 3월 17일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수하를 이끌고 석전대제 참석했다. 이하는 그 신문기사다. 석전 거행, 데라우치 총독 참배 2월 17일은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경학원經學院에서 춘기 문묘文廟의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거행하였는데 이날은 즉 중춘仲春의 상정일上丁日이라. 융융한 화기는 반궁泮宮에 가득하고 생기가 그치지 않는 춘풍은 묘정에 불어와 명륜당明倫堂 앞의 화훼교목에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이 나타나니 혼연한 덕기德氣가 초목에 미치는 듯하더라..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그 틈에 한 몫 잡아보겠다는 자들도 상당했다. 과거에는 명함 한 장 없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유생 대표"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기도 했으니, 그 대표가 이 아래 나오는 송종수(1841生, 서대문 밖 홍파동 866번지 거주)라는 자다. 1911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 조선에 부임하자 부끄럽기 짝이 없는 환영사를 써서 총독부 돈으로 일본 유람도 다녀왔다. 훗날 1920년에는 순종에게 삼년복상을 해야한다는 상소를 올리고도 했고(매일신보 1920.1.21.), 1922년에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받든다며 "부자교父子敎"라는 신흥종교를 창시해 사람들로부터 교비를 갈취했다.(동아일보 1922.10.4.) 세상의 일변에 친일행위를 한 자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먼 훗날 유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