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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의친왕 이강은 상해 임시정부의 망명 시도로 대한제국의 여타 다른 황족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시도를 제외하고 그의 독립운동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음주벽이나 축첩으로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윤치호 역시 일기에서 상해 임시정부에서 의친왕을 모셔가도 별반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매스미디어 등에서 고종, 명성황후, 덕혜옹주 등을 독립의 아이콘으로 그려 내면서 마치 이것이 사실인냥 포장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가 2024년 6월 27일 시청 여민관에서 개최한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이라는 학술행사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집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https://ww..
윤자형은 “대한제국기 때, 선전관 등을 역임하다가 을사조약 이후 의병투쟁을 전개하였고, 원각교를 창시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무신 · 의병장 · 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의 사적은 내내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88년 성신여자대학교 이현희 교수에 의해 발굴되었다. 자료는 칙서와 칙명 2건인데, 칙서는 잘 보이지 않아 패스하고 칙명을 읽어보았다. 윤자형 칙명의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勅命 칙명 正二品嘉義大夫尹滋亨 정이품 가의대부 윤자형 爲義兵大將兼湖南三道 위 의병대장 겸 호남삼도 陸軍大都督者 육군대도독자 開國五百十七年七月十日 개국오백십칠년 칠월 십일 (勅命之寶) (칙명지보 날인) 이 자료를 보고 몇 가지 의문이 들어 부기한다. 1. 가의대부는 문산계 정2품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