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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북연의 두 번째 황제 풍발馮跋의 재기載記다. 북연의 창업주는 모용운慕容雲, 즉 고운高雲이었다. 고운은 측근에게 살해되었는데, 이때 자제도 함께 죽었다. 풍발은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황제에 즉위한 뒤, 모용운 정권을 고스란히, 국호까지 물려받았다. 풍발은 신도信都 사람으로 기록 상 한족漢族이었으나 이민족 국가를 인수했기 때문에 재기에 수록되었다. 그런데 고운은 후연後燕 모용씨 왕족들과 한 권에 입전된 반면, 풍발 이하 북연 군주는 서진西秦 걸복씨乞伏氏 뒤에 실렸다. 전, 후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진서) 고운의 북연을 인수한 풍발(전편) 북연의 두 번째 황제 풍발馮跋의 재기載記다. 북연의 창업주는 모용운慕容雲, 즉 고운高雲이었다. 고운은 측근에게 살해되었는데, 이때 자제도 함께 죽었다. 풍발은 반란..
진서晉書에 수록된 후연의 마지막 군주 모용희의 전기다. 무공은 탁월했지만 어려서는 형수 정씨丁氏와 간통하고, 나중엔 부씨苻氏 자매에게 빠져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십육국 시대는 워낙에 폭군이 많았던 터,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광개토대왕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모용성 때에는 장수로 고구려의 신성新城과 남소성南蘇城과 함께 영토 700여 호, 백성 5천 여호를 빼앗았는데, 정작 자신이 군주일 때는 광개토대왕에게 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용희 慕容熙 희熙는 자가 도문道文으로 모용수慕容垂의 작은 아들이다. 처음에 하간왕河間王에 분봉되었다. 단속골段速骨이 난을 일으켰을 때 모용씨 여러 왕이 살해당했지만 희는 고양왕高陽王 숭崇에게 총애를 받아 죽임을 면할 수 있었다. 난한蘭汗이 모용보를 죽인 뒤 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