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삼국지) 촉한의 후장군, 황충黃忠 본문

오늘의 고전

(삼국지) 촉한의 후장군, 황충黃忠

자불어 2023. 7. 19. 00:04
728x90

*정사 삼국지에서 황충의 분량은 불과 몇 줄 안된다. 배송지도 관심이 없었는지, 자료가 없었는지 주도 한 줄 없다. 소설에 나오듯, 관우나 장비, 마초는 실제 황충이 자기들의 반열, 즉 오호장군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황충黃忠은 자가 한승漢升으로 남양인南陽人이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가 중랑장中郎將으로 기용해 표의 종자 반磐과 함께 장사長沙 수현攸縣을 방어했다. 조공曹公이 형주荊州에 승리하자 비장군裨將軍에 가수하고 예전 자리에 있도록 하고 장사수長沙守 한현韓玄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선주先主가 남쪽 여러 군을 평정하자 충忠이 인질이 되어 촉蜀으로 따라 들어갔다. 하맹葭萌에서 관직을 받아 군대를 돌려 유장劉璋을 공객했다. 충은 항상 먼저 올라가 진을 함락했고 용기와 기상이 삼군의 으뜸이었다. 익주益州가 평정되고 토로장군討虜將軍을 받았다. 건안建安24년 한중漢中 정군산定軍山에서 하후연夏侯淵을 공격했다. 연의 무리는 잘 훈련된 정병이었으나 황충이 진격하여 기어이 앞으로 나가며 사졸들을 격려해 이끌자 쇠북(金鼓)이 하늘을 진동하고 환성이 골자기를 움직여 단번에 연의 목을 베자 연의 군대가 대패했다.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승진했다. 그 해에 선주先主가 한중왕漢中王이 되고 황충을 후장군後將軍으로 삼으려 하자 제갈량諸葛亮이 선주에게 유세하길, “충의 명망은 실제 관우[關]나 마초[馬]만 못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동렬로 놓으시면 마초나 장비[張]는 가까이 있어 공을 세우는 것을 목격했으니 설득될 것이나 관우는 멀리 떨어져 있어 이를 들으면 필시 기분나빠할 것이니 그리 할 수는 없습니다.” 선주가 말했다. “내가 직접 오해를 풀겠소.” 그리고 관우와 동렬에 놓고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주었다. 이금해 사망하니 시호는 강후剛侯다. 아들 서敍가 일찍 죽어 후사가 없다.

黃忠字漢升, 南陽人也. 荊州牧劉表以爲中郎將, 與表從子磐共守長沙攸縣. 及曹公克荊州, 假行裨將軍, 仍就故任, 統屬長沙守韓玄. 先主南定諸郡, 忠遂委質, 隨從入蜀. 自葭萌受任, 還攻劉璋, 忠常先登陷陳, 勇毅冠三軍. 益州既定, 拜爲討虜將軍. 建安二十四年, 於漢中定軍山擊夏侯淵. 淵眾甚精, 忠推鋒必進, 勸率士卒, 金鼓振天, 歡聲動谷, 一戰斬淵, 淵軍大敗. 遷征西將軍. 是歲, 先主爲漢中王, 欲用忠爲後將軍, 諸葛亮說先主曰: "忠之名望, 素非關・馬之倫也. 而今便令同列. 馬・張在近, 親見其功, 尙可喻指. 關遙聞之, 恐必不悅, 得無不可乎!" 先主曰: "吾自當解之. " 遂與羽等齊位, 賜爵關內侯. 明年卒, 追諡剛侯. 子敍, 早沒, 無後.

황충


三國志 蜀書 卷36 關張馬黃趙傳(黃忠), p.948.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