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오호십육국 시대, 인간 백정 석수 본문
오호십육국 가운데 후조(後趙)라는 나라가 있다. 흉노의 일파라고 하는 갈족(羯族) 출신 석륵(石勒)이 세운 나라로, 서진(西晉)을 멸망시킨 유총(劉聰)-유요(劉曜)의 전조(前趙)를 멸하고 일시 화북을 석권하였던 나라다. 건국 군주 석륵은 비록 이민족 출신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나름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군주였다. 비록 그의 집권기 내내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한족 문인들이 중국의 고전을 읽어주는 것을 즐겼다. 그가 죽은 후, 아들 석홍(石弘)이 즉위하였지만 모든 실권은 종제(친동생일지도 모르지만) 석호(石虎)의 손에 있었다. 이 석호라는 인간은 너무도 전쟁터를 전전한 탓인지 인간도륙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런 삼촌이 버젓이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 아버지가 황제라는 이유로 내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석홍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짐작하고 석호에게 황위를 양보하기를 청했다. 하지만 성격이상자 석호는 그마저 거부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천자는 추대되는 자리로 자기 마음대로 제위를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라면 이쪽에서 폐위시킬 뿐입니다.”라고 하며 석홍을 폐위시켰다. (그는 황제의 권한을 모두 행사하며 죽기 1년 전까지도 “조천왕(趙天王)”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도 그의 아들에 비해선 성인이었다. 그의 아들 석수(石邃)는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변태였다.
최홍(崔鴻)의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는 그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석수는) 이후 주색에 탐닉하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궁인 가운데 아름답고 정숙한 이들을 꾸민 후, 머리를 잘라 피를 씻어내고 쟁반위에 올려 좋고 돌아가며 함께 보도록 하였다. 또한 비구니 가운데 자색이 있는 자를 궁중으로 들여 잠자리를 한 뒤 살해하여 소와 양의 고기를 섞어 삶아 먹었다. 또한 주변에도 나누어 주고 그 맛을 알기를 바랐다.”
其後荒酒淫色, 驕恣無道. 或夜百騎宿於宮臣家, 淫其妻妾. 裝飾宮人美淑者, 斬首洗血, 置於盤上, 傳共視之. 又納諸比丘尼有姿色者, 與其交褻而殺之, 合牛羊肉煮而食之, 亦賜左右, 欲以識其味也.
그는 그 후 아버지 석호를 상대로 반란을 획책하다 사망한다. 그 첫 번째 단초가 된 것이 아버지의 매질이었다. 석호는 석수를 태자에 임명한 뒤, 국정을 맡겼다. 석수가 석호에게 보고를 올리면 어떤 때는 이런 사소한 일까지 왜 내게 보고를 하냐며 꾸짖고, 그래서 보고를 하지 않으면 왜 보고를 하지 않았냐며 매질을 했는데, 한 달이면 그 횟수가 2-3번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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