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덕수궁 석조전에서 일식 먹고 찍은 고종 가족 사진 본문
20세기 전후 아시아의 군주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사진 찍기를 싫어했던 사람과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사람. 일본의 메이지 천황은 자신의 왜소한 체격이 드러날까 두려워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많지 않다. 반면 대한제국 고종의 경우, 사진에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무당을 신뢰해 왕실 재정으로 궁궐 곁에 관우 사당도 차려주고, 눈 밖에 난 신하는 외국까지 자객을 보내 암살하고 또 그것으로 모자라 또 시신을 갖고 오게 해서 팔도에 뿌렸던 임금이었으나 커피를 좋아했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기호만큼은 참으로 '모던'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도 꽤 많다. 역사 기록물로서 사진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떤 계기로 찍었는지가 중요하다. 오늘 옛 신문을 보다가 고종의 가족사진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와 관련된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이 사진과 같은 사진이 매일신보 1918년 1월 22일 자 1면에 실렸다. 사진 캡션에는 "20일 덕수궁 석조전에서 이왕전하 일족 일본요리 시식 기념 촬영(경어 어御는 생략)/향하여 좌로부터 왕세자 전하, 이왕 전하, 이태왕 전하, 이왕비 전하, 복녕당 아기씨)"라고 했다. 복녕당 아기씨가 덕혜다.
이날 고종이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은 계기는 일본 체재 중 잠시 돌아온 왕세자, 옛 영친왕 이은이 덕수궁으로 초대해 일본 요리를 대접한 것이다. 왕세자 이은은 바로 전해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이해(1918) 1월 13일부터 26일까지의 일정으로 귀국했다. 잠깐의 귀국이었으나 조선 전역이 술령였고 그가 다니는 곳마다 뉴스가 되었다. 이날 신문에는 이 기사뿐 아니라 왕세자가 창덕궁을 돌아보며 카메라로 하마를 찍었다는 기사도 있다. 이날 일본요리 시식회는 영친왕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가족 모임이었다. 이날 매일신보 3면에는 이렇게 기사를 이어갔다.
일본요리를 칭찬하심미술적이다, 담박하다, 맛있다고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왕세자 전하께서는 20일 오후 0시 30분부터 석조전에서 태왕전하, 이왕과 이왕비 세 전하를 초대하사 일본 요리를 드렸는데, 국분차관은 그 모양을 말하여 이르길, 세 전하께서는 일본요리를 처음 진어하시는 터임으로 마음에 드실는지 염려하였는데 식탁을 물리신 뒤에 살피여 뵈옵건데, |
사진의 메타데이터를 정리하자면,
- 시간/장소: 1918년 1월 20일 오후 3시경/덕수궁석조전
- 촬영대상: 고종 가족(이왕세자, 이왕, 이태왕, 이왕비 윤씨, 덕혜공주) *당시 명칭에 따라
- 촬영목적: 일본육사 졸업, 소위 임관 후 잠시 귀국한 왕세자 주재 일식 오찬 기념
마치 영국유학 중 잠깐 집에 온 아들이 피시 앤 칩스가 그립다며 가족 모임 장소를 이태원 어디 펍으로 잡은 느낌이다. (한복 입고) 게다가 브리티시 팝까지 들려드리면서, 아버지, 형, 형수, 여동생까지 모두 맛나게 먹었다는데,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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