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이왕가 사람들 연재의 이유 본문
얼마 전 우연히 어떤 글을 보았다. 그 글은 고종과 그 일족에 대한 비난을 "식민사관"으로 치부하며, 손톱만한 독립운동, 또는 뇌피셜 속 저항의식을 미화, 분칠하고 있었다. 후손이 조상의 어두움을 가리고 또 작은 기여를 현창으로 포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함부로 그들의 과오를, 또 역사적 사실을 "식민사관"으로 덮어버리려는 모습을 보며, 진정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참모습을 모두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몇 년 전 왕실 후손 한 명이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황제 즉위식을 열었다. 황제에 옹립된 이는 고종의 손녀이자 이강 공(의친왕)의 딸 이해원이었다. 1919년 태어나 일제강점기 내내 운현궁에서 호의호식하고 또 경기여고, 게이오대학(경응의숙) 법문학부까지 졸업했으나 광복 이후 스스로 생계를 일구지 못하고 또 말년에는 조상 땅 찾기에 연거퍼 패소하며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황당한 황제 즉위식은 봉건적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의 삶을 요약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실을 우대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고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1조의 “정부를 참칭한 자”에 해당한다. 동 법에 따르면 정부를 참칭한 자는 수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게 되어있다. 또 간부 또는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정부는 무관심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어처구니 없었을 거다.
2.
고종의 후손은 일제하 편찬된 고종실록, 순종실록은 믿을 수 없는 자료라 말한다. 그럼 일제치하 고종실록, 순종실록은 어디서 만들었을까?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었을까? 아니다. 그 실록은 이왕직李王職에서 만들었다. 나라를 망하게 한 대가로 받은 그들의 자리인 왕공족, 그들의 사무처에서 만든 것이다. 이왕직의 수반은 당연히 이왕李王이다. 그러면 역대 이왕은 누구인가? 순종, 영친왕이다. 만일 실록이 역사왜곡으로 점철되었다면, 가장 큰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바로 이왕들에게 있다. 인쇄되어 오늘날 전해오기까지 뭐했단 말인가. 도대체 누구를 탓하는가.
3.
그들은 일제강점기 개인기록물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로 매천야록을 든다. 매천 황현은 “경술국치 이후 조선이 선비를 500년간 길러냈는데, 그 나라가 망하고 선비 하나 죽지 않는다면 슬플 일”이라며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그런 그가 남긴 기록을 고종의 후손 따위가 믿을 수 없는 자료로 치부한다. 조선이란 나라가 500년 이어오며 제국 되었다고 호들갑까지 떨었건만 그 나라의 최고 수반으로 권력과 부를 오로지 누렸던 이왕실 가운데 그 책임을 지고 목숨을 버린이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일제가 강하시킨 왕공 작위를 받고 호사를 누렸다. 일제가 황제를 왕으로, 왕을 공으로 격하시켰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일본 천황이 준 작을 받은 거다. 이완용이 후작을 받듯, 송병준이 백작을 받듯 고종은 태왕을 순종은 왕을 받았다.(이래서야 이완용 후작, 송병준 백작 등 조선귀족을 어찌 욕하겠는가. - 한 때 고종이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던 유길준은 작위를 거부, 반납했다.)
그런 점에서 고종과 그 일가, 왕공족이야말로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친일파다. 이제 그 부끄러웠던 이왕가의 행적을 하나하나 열거해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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