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울산왜성, 그리고 비석 본문
경남 해안가 몇 곳에는 왜란 때 일본 장수들이 쌓은 왜성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입장에서는 성과 없이 그 큰 전쟁을 끝낼 수 없었을 테고, 경상도 일부라도 점령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왜성이 궁금해서 울산왜성을 찾았다. 그런데, 울산왜성 주차장으로 검색하니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 인터넷에서 이리 저리 찾아보니 울산하면 떠오르는 지명, 학성공원이 울산왜성이었다.
성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전망이 좋고 태화강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있어 이곳에 성을 지은 까닭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산등성이 중간 중간에 위치한 평지에는 각기 삼지환(三之丸), 이지환(二之丸), 본환(本丸) 팻말이 있다. 산노마루, 니노마루, 혼마루를 우리식 한자로 표현한 것이 약간 어색했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 동네 야산 곳곳에 조성한 근린공원과 크게 다를 바 없어 팻말이 없었다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이곳이 일본식 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군데군데 남아있는 성벽이다. 가파른 경사에 모서리를 뾰족하게 다듬은 성벽은 일본에서 봤던 성의 모습이다. 경상좌도병영성과 울산읍성에서 재료를 가져다 썼다 하나 1597년 10월부터 불과 몇 개월 만에 일본식 성을 만들었다는 것이 꽤나 놀랍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강항(姜沆)은 후시미 성이 1년도 못되어 완성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왜놈들이 제 백성을 얼마나 혹사시키는지” 알겠다고 했는데, 제 백성도 아니었으니 오죽했을까.
올라가는 길 중간 중간에는 여러 기념비가 서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고김홍조공덕비(故金公弘祚功德碑)였다. 비석은 혼마루로 올라서기 최근에 보수한 듯 보이는 성벽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판에는 울산왜성은 본래 사유지였는데 김홍조가 기증하여 공공공원이 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다시 길을 가려고 하는 순간, 비석 옆에 ‘쇼와3년’이라는 건립연대가 보였다. 1928년, 그렇다면 기증 대상은 오늘날의 울산시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울산군이었을터, 안내판과는 다른 이야기도 있을듯하여 올라가 내용을 살펴보았다. 찬자(撰者)가 박영효(朴泳孝)고 글쓴이는 김돈희(金敦熙)다. 모두 친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집에 돌아와 비석을 읽어보니, 그는 뛰어난 인물로 군과 면에서는 위원을 역임했고, 산업방면에서는 장이나 부장, 위원이나 고문을 맡았고, 성적으로 말하면 동패(銅牌), 은패(銀牌), 목배(木盃), 은배(銀盃) 하나로는 부족했다고 한다. (이것들은 모두 총독부에서 유공자들에게 상으로 준 것이다.) 박영효는 비명에서 당시 군수이자 대표적 친일인사인 손영목(孫永穆)의 부탁을 받아 지었다고 하였다.
비석의 내용으로 봐서는 김홍조의 친일행적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웹 상에 떠도는 세간의 정보와는 사뭇 달랐다. “구한말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심지어는 독립운동가로 일제에게 독살되었다는 설까지 있었다. 근대는 말 그대로 너무 가까운 과거이기에 현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후손들의 영향력, 지역의 인물을 조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등에 의해 얼마든지 옛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한다. 어디 한둘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비석은 기려야만 하는 인물의 기념비인 까닭에 그의 치부를 담고 있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목이나 읽지 내용을 누가 읽겠는가!) 비석에는 그가 서울, 부산, 도쿄, 히로시마의 남녀 유학생에게 두루 학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아마도 오늘날 그를 구해준 가장 큰 손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라도 정부도 바뀌었지만 사람은 남았을테니.
*하나 더, 일제강점기 많은 부호들이 일인 관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독립운동 자금도 댔다.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하듯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사람이 꽤 된다. 요즘도 이쪽 저쪽을 오가는 자가 많은데, 그 시대라고 달랐을까. 바꾸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때도 세상은 복잡다단하다는 걸 이해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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