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순창군) 용궐산 명필 거리 - 나랏돈으로 자연훼손 본문

세상 둘러보기

(순창군) 용궐산 명필 거리 - 나랏돈으로 자연훼손

자불어 2021. 9. 4. 01:29
728x90

 

 

순창군이 군내 용궐산에 명필거리를 만들겠다며 여기 저기서 집자해서 바위에 드릴로 새기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고사성어길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며,  "요즘 세대가 선현들을 잊고 있어 안타까워"라는 발상도 우습기 짝이 없다. 어디 요즘 세대를 함부로 진단하며, 그 자신들은 얼마나 선현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여기 참여한 공무원, 군의회 의원, 수주한 회사 직원들까지 모아다 시험이라도 쳐보고 싶은 심정이다. 

 

모자이크 속 담당 공무원은 말한다. "한석봉 선생에 글씨 한 점을 구경해본 사람이 없어요. 여기에 그 글씨가 있구나라고 해서 우리나라 선인들도 알리고" 아무렴 산에 간 사람들이 그 글씨보러 산에 갈까? 그리고 진본성도 없는 그 글씨보고 감화를 느낄 수 있을까? 

 

뉴스에 언듯 언듯 새겨 놓은 글자가 보이는데, 

 

- 추사 김정희의  "谿山無盡"

"계산은 끝이 없다" 원본은 종이에 쓴 건데, 종이에 쓴 것 그대로 새겼다. 추사가 글자를 그리 배열한 것은 나름대로 종이를 고려하고 쓴 것일 텐데, 전혀 다른 화폭에 그리 새긴다는 건, 저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추사가 다시 와서 본다면 꽤나 황망하기 그지 없어 했을 듯.  (아래 사진이 원본)

 

김정희, 계산무진, 간송미술관 소장

 

- 석봉 한호의 "仁者樂山, 知者樂水"

논어의 유명한 구절로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그런데 석봉이 쓴 것이 있는 지, 아님 천자문에서 집자한 것인지 모르겠다.

- 누구의 글씨인지 모르겠지만 "龍飛鳳舞"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춘다" 식견이 좁아 누구 글씨인지 알 수 없으나 "용비봉무"는 중국 서진(西晉) 시대 사람 곽박(郭璞)이 항저우 인근의 천목산(天目山)을 읊은 시구다.  

다른 뉴스를 보니 안중근의 글씨도 새긴다던데... 여하튼, 순창군은 "다른 지역에선 수 백년 전 조선 유학자들이 암석에 쓴 글씨가 명물이 되었다며 고사성어길도 후일 명물이 될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 명승의 각석은 누군가 놀러가서, 그곳의 풍광을 보고 자신 또는 선현의 글을 차용해 감상을 남긴 것이며 주변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여 그곳에 새긴 것이다. 그러나 요즘 관점에서는 이 마저도 잘했다 할 수 없는데, 군수나 공무원의 취향에 따라 맥락도 없이 이 글자 저 글자, 단발마로 몇 개 정해 새겨 놓으니 용궐산과는 "산"이라는 것 외에는 의미도 맞지 않고 맥락도 없다.(호의적으로 쓴 다른 기사에선 담당 과장이 이거 찾느라 상당히 힘들었다며 자랑인듯 이야기하더만-꽥)  한마디 더하면, ㅎㅎㅎ 수 백년 후까지 내다보고 드릴로 글자 새기고 있는 순창군의 미래 전망에 헛웃음이 절로 난다. (비교해야 할 걸 비교해야지)  근데, 순간 걱정되는 건 혹시 바위 어디에는 군수, 시의회 의장 이름도 하나 새기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근데 잠시 "으악"했다가 이내 차라리 그게 낫겠다도 싶었다. 첫 번째로는 도대체 어떤 X들이 자연에 함부로 손을 댔는지 남겨야 할 것이오.  두 번째는 지금과 같은 수준이라면, 언젠가 먼 훗날에는 친필이라고 우기며 지역의 자랑입네, 관광자원 개발입네, 오늘과 비슷한 논리 덧붙여 OOO기념관, OOO공원. OOO마을 등등을 만들겠다며 나랏돈에 "2차 가해"까지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순창군은 이런 뉴스가 나가고도 계속 하겠단다.  이런 거 굳이 하겠다면 하고 싶은 사람 돈으로 했음 좋겠다. 군수가 돈을 내던, 의원들이 돈을 내던, 담당 공무원이 돈을 내던, 공무원노동조합이 돈을 내던...나랏돈 말구 말이다.  

오마이뉴스의 모 기자는 "왜 하필 한자냐"라는 기사를 올렸다. 그러나 한자건, 한글이건, 영어건 새기는 것이 문제지 어느 것인지가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촌스럽기는 매양 마찬가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