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광화문 비각: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2) 본문
2. 잔치에 진심인 고종
1902년 4월 24일 고종은 조칙(詔勅)을 내려 10월 18일(陰9.17.)에 경운궁(慶運宮)에서 칭경예식을 거행하겠다며 신료들에게 의식 및 절차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였다. 약 3개월 뒤인, 7월 20일 의정부 의정 윤용선은 고종의 조칙에 대한 회답으로 의식 및 세부 사항을 보고하였다. 공식적인 "잔치의 서막"이었다.
고종39년(1902) 7월 20일(양력) 의정부 의정 윤용선이, ‘어극(御極) 40년을 칭경(稱慶)하는 예식을 참작하고 의논해서 마련하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신들이 정부(政府)에 일제히 모여 자세히 상의해서 의정(議定)한 내용을 별단(別單)에 써 들입니다.’라고 상주(上奏)하니, 윤허하였다. 【별단 1. 올해 10월 18일 대황제 폐하(大皇帝陛下)의 즉위(卽位) 40년을 칭경할 때 높고 낮은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칭송하는 경축 의식을 설행할 것입니다. 1. 외부 대신(外部大臣)은 6개월 전에 정부(政府)와 의논한 다음 수도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各國)의 공사(公使)와 영사(領事)들에게 칭경하는 예식 날짜를 알려 본국 정부에 통보하게 할 것입니다. 1. 예식원(禮式院)에서는 6개월 전에 아뢰어 황제의 칙령으로 위원(委員)을 정해가지고 분장(分掌)하게 하여 거행하게 할 것입니다. 1. 경축 의식날에 원구단(圓丘壇)에 고유제(告由祭)를 친행(親行)하실 것입니다. 1. 원구단에 고유제(告由祭)를 친행하실 때 황태자 전하(皇太子殿下)가 규례대로 모시고 참석하며, 종친(宗親)들과 문무의 백관은 예문(禮文)대로 예식을 진행하고 각국 사신들은 반열을 따라 들어와 참석할 것입니다. 1. 경축 의식 이튿날 축하를 올릴 때 대황제 폐하는 중화전(中和殿)에 친림(親臨)하시되 황태자 전하는 규례대로 모시고 참석하며 종친들과 문무의 백관은 예문대로 예식을 진행할 것입니다. 1. 관병식(觀兵式), 원유회(苑遊會), 각종 연회는 예식원(禮式院)에 관계되는 각 부(府), 부(部), 원(院), 청(廳)에서 규례대로 마련하여 설행할 것입니다. 1. 칭경 예식 때 일체 시행해야 할 여러 일은 위원이 각 해사(該司)에 알려 그로 하여금 기한에 앞서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분명하고 질서 있게 거행하도록 할 것입니다.】[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DB 고종실록(권42)]
그리고 8월 9일에는 윤용선의 보고에 따라 칭경예식사무위원회(稱慶禮式事務委員會)를 설치하고 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 민병석(閔丙奭)을 위원장에 임명하였다.
농상공부대신 민병석을 칭경예식사무 위원장(稱慶禮式事務委員長)에 임용하고, 수륜원감독(水輪院監督) 오에 다쿠시 〔大江卓〕에게 농상공부 임시박람회(臨時博覽會)의 감사원(鑑査員)을 겸임시켰으며, 종1품 김영목(金永穆)을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에, 특진관(特進官) 남정철(南廷哲)을 홍문관 학사(弘文館學士)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勅任官) 3등에 서임하였다. [고종실록 권42]
얼마 전까지 본인은 잘한 것이 없고 여전히 백성들의 삶을 편하지 않다고 했던 임금이 요즘으로 따지자면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행사기획 추진단을 꾸려 성대한 의식과 더불어 각국 외교사절과의 성대한 파티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행사 바로 전달인 9월 6일에는 칭경 예식에 참여하는 군부 및 경무청 관리는 삭발하고, 현, 전임 육군부장 이하 모두 단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칙령으로, 그것도 야밤에. 고종의 진심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해 10월 18일, 행사는 열리지 못했다.
3. 끝내 열리지 못한 행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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