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출전 본문
오늘 이준석이 "양두구육"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양두구육은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 유래한 말이다. 안자춘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齊나라 영공靈公은 부인이 장부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하여 나라 사람들(國人)이 모두 그렇게 입었다. 공이 관리를 시켜 금지하며 말했다. “여성이 남성처럼 꾸민자는 옷을 찟고 허리띠를 자르라.” 옷을 찟고 허리띠를 잘라 서로 바라보게 하였으나 그치지 않았다. 안자晏子가 알현하자 영공이 물었다. “과인이 관리에게 여성이 남성처럼 꾸미고 다니지 말라 하여 옷을 찢고 허리띠를 잘라 서로 바라보게 했는데도 그치지 않으니 왜인가?” 안자가 대답했다. “임금께서는 안으로는 입게하고 밖으로는 금하시니 이는 소머리를 문에 걸어 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공께서는 어찌하여 안에서는 입지 못하게 하지 않으시면서 어찌 밖에서 그것을 막겠다 하십니까?” 공이 옳다며 안에서도 입지 못하게 하니 한달이 지나자 나라 전체가 그리 입지 않았다."
(원문) 靈公好婦人而丈夫飾者,國人盡服之,公使吏禁之,曰:「女子而男子飾者,裂其衣,斷其帶。」裂衣斷帶相望,而不止。晏子見,公問曰:「寡人使吏禁女子而男子飾,裂斷其衣帶,相望而不止者何也?」 晏子對曰:「君使服之于內,而禁之于外,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公何以不使內勿服,則外莫敢為也。」公曰:「善。」使內勿服,踰月,而國莫之服.(晏子春秋 卷6 內篇雜下 靈公禁婦人為丈夫飾不止晏子請先內勿服第一)
그러면 왜 소머리가 양머리가 되고, 말고기가 개고기가 되었을까? 이 말을 나중에 송나라 때 선승禪僧들이 겉만 번드르르 한 놈들이 대중을 구제한다고 설치는 것을 “양머리 걸어 놓고 개고기 판다(懸羊頭賣狗肉)”로 바꿔 표현하면서 그리 되었다.
춘추시대까지 고기하면 소고기였으나, 오호십육국 이래 북쪽 호족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수당대를 거쳐 송대에 와서는 양고기가 인기를 끌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중국에서 고기의 으뜸은 돼지고기였겠으나 돼지머리를 걸어두진 않았나보다. 또한 제주도에서 별미라 하는 말고기도 별미(다른 맛)일 뿐 대체로 진미로 생각하진 않았었던 듯하며, 세간을 뒤흔드는 개고기 역시 보신에 좋다하나 예로부터 여름 한철 바짝 먹었던 것을 보면 소나 양만은 못했다 여겼나보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샤또 브리앙과 베이비 프렌치 숄더랙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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