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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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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잔재를 지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설령 그 시대가 진정 치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잔재를 후손에게 물려주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흔적을 지우고 없애려고 힘쓰는 이들이야말로 증거를 인멸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자들이다. 몇 년 전 충청남도 부여의 사자루 현판 사건은 그 대표적 일례다. 부여는 백제의 고도로 부소산성은 수도가 위기에 처할 때 농성 하고자 만든 산성이다. 오늘날 부소산성 정상에는 사자루라고 하는 누정이 있다. 사자루泗泚樓는 부소산의 다른 이름이 사자산泗泚山이오, 부소산성의 다른 이름이 사자성泗泚城이었기에 붙은 이름이나 부여의 옛 이름이 사비泗沘인 데다 한자도 비슷하게 생겨 ‘사비루’로 잘못 읽히기도 했다. 앞면 3칸, 옆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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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대한제국황실 가족들은 나라를 잃고도 호의호식했다. 이들은 일본황실의 왕공족으로 대우받았다. 달라진 것은 다스릴 나라, 부려 먹을 백성이 사라졌을 뿐이다. 예전 교과서에는 대한제국의 멸망을 ‘한일합방’이라고 표현했으나, 이제는 ‘국권피탈’이라고 쓴다. 일제강점기라는 표현도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합방’이라는 단어도 가려서 쓴 것이니 당시에는 ‘일한병합’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른 바 '일한병합'을 기념하여 일본은 여러 가지 기념물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쇄물이었다. 사진첩, 팜플렛, 엽서 등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왕공족은 여기에 단골메뉴였다. 허울뿐이었던 제국 놀이는 채 20년도 유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던 황제 가족들은 기념물의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