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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역사
조효손祖孝孫은 유주幽州 범양인范陽人이다. 부친 숭유崇儒는 학업으로 이름을 날려 제주장사齊州長史를 역임했다. 효손은 박학하고 역산에 밝아 일찍부터 지식과 견문에 통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개황연간(581~600) 종률鍾律이 많이 결실되어 비록 하타何妥・정역鄭譯・소기蘇夔・만보상萬寶常 등 다 같이 토론하고 상의했으나 이리저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강좌江左를 평정한 뒤 진陳의 악관樂官 채자원蔡子元・우보명于普明 등을 얻어 청상서清商署를를 설치했다. 이때 우홍牛弘이 태상경太常卿이어 효손孝孫을 협률랑協律郎으로 삼아 자원, 보명과 함께 아악雅樂을 참정하게 했다. 이때 다시 진의 양산태수陽山太守 모상毛爽이 경방율법京房律法을 이치를 알아 관을 배치하면 (절기에 맞게) 재가 날아갔고 달의 움직임이 모두 징험에 부합..
당검唐儉은 자가 무약茂約 병주并州 진양인晉陽人이다. 북제北齊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옹邕의 손자다. 부친 감鑒은 수隋의 융주자사戎州刺史였다. 당검은 불우한 환경에 처해 규범에 얽매이지는 않았으나 부모를 섬김에 효자로 명성을 날렸다. 전에 당감(당검의 부친)이 고조高祖와 친분이 있어 함께 금위禁衞를 지휘했다. 고조가 태원유수로 있을 때 검과 태종은 매우 밀접하게 지냈다. 당검은 태종에게 수의 황실이 혼미하고 흐트러졌으니 가히 천하를 도모할 만하다고 종용하며 설득했다. 태종이 고조에게 아뢰자 불러들여 몰래 세사를 논했다. 당검이 말했다. “명공明公께서는 옥좌에 오르실 귀한 상입니다. 또한 이씨도 도첩에 있지 않습니까. 천하의 향배는 현재의 조정에 있지 않습니다. 관부의 창고를 열어 남쪽의 호걸들에게 손짓하고 북..
일제강점기 신문을 보면 당시 여러 범죄 사건도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흉악범에 한해 신상을 공개하지만 70~80년대까지, 성명은 물론, 주소, 나이, 얼굴 사진까지 공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래 기사는 그 대표적인 예다. 아마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을 터, 신문 기사를 소개한다. 범인 중 한 명은 서울 옥인동에 사는 28세 노동자 박태원, 다른 한 명은 고양 숭인명 정릉리에 사는 18세 무직의 이완응이다. 둘은 옥인동의 '칠성대七星臺'라는 절에서 날품팔이를 하다 만난 사이다. 그 사건인즉슨 둘이 어느 날 작당하여, 혹은 둘 가운데 한 명이 계획하여 시내 모 운동구점에서 장난감 권총과 마스크를 사서 은평면 홍제리에서 미곡상(쌀집)을 하는 박승창의 집에 들어가 현금 110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같은 ..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그 틈에 한 몫 잡아보겠다는 자들도 상당했다. 과거에는 명함 한 장 없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유생 대표"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기도 했으니, 그 대표가 이 아래 나오는 송종수(1841生, 서대문 밖 홍파동 866번지 거주)라는 자다. 1911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 조선에 부임하자 부끄럽기 짝이 없는 환영사를 써서 총독부 돈으로 일본 유람도 다녀왔다. 훗날 1920년에는 순종에게 삼년복상을 해야한다는 상소를 올리고도 했고(매일신보 1920.1.21.), 1922년에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받든다며 "부자교父子敎"라는 신흥종교를 창시해 사람들로부터 교비를 갈취했다.(동아일보 1922.10.4.) 세상의 일변에 친일행위를 한 자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먼 훗날 유림의 ..
의친왕의 후손들은 "의친왕이 '공'위를 박탈당하고 일본으로 끌려갔다"고 주장한다.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의 포럼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시대의 증언"의 자료집에서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이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의친왕의 의병군자금 지원, 독립운동 지원 등을 보면서도 체포하지 못했던 일제는 의친왕에게 형식적으로 부여되었던 이강 ‘공’이라는 공족의 작위를 박탈하였고 평민으로 강등했으며, 일본 왕공족 전통에 따라 ‘공’위는 장남 이건에게 습공되었고 의친왕의 한반도 내 여행의 자유를 박탈하였다. 의친왕은 1930년 6월 12일 결국 일본 큐슈 지역으로 강제로 압송되어 가게 되고, 나중에 도쿄로 옮겨졌다. 이준은 이강이 공의 작위를 빼앗기고 한반도 내 여행의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
#제국익문사 #독리 #이호석 #완은군 #이주용 #역사왜곡 #세종특별자치시 #의친왕1. "제국익문사비보장정"과 제국익문사몇 년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제국익문사비보장정"이라는 책이 발견되었다. 고종 재위 시기 통신사(정보원)에 대한 규정으로 직제와 역할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은 고종의 지휘 하에 실제 활동했던 듯 제국익문사를 그렸다.(또 무슨 소설도 하나 나온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자를 제외하곤 제국익문사에 관한 어떤 자료도 없다. 그런 까닭에 누가 참여했으며, 또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던 어느날 의친왕기념사업회에서는 이호석李浩奭의 유품으로 전한다며 도장 2과(성총보좌인, 제국익문사독리인)를 공개했다. 그러자 그간 고종 미화에 공들였던 전 ..
#의친왕은 독립지사가 아니다. #한량을 지사로 역사 왜곡 #세종시의 역사왜곡사카모토 다쓰노스케 (坂本辰之助)가 쓴 책 "황실 및 황족" 의 의친왕 부분이다. 1909년 초판 발간 이후 10년에 2판을 찍었다. 일본의 강점 후 새로 판을 내 조선왕공족을 추가했다. 여기에는 이왕(순종), 이태왕(고종) 등 왕공, 비빈의 작을 받은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坂本辰之助 編, 皇室及皇族(2版)(東京: 昭文堂, 1910.10.), (朝鮮王公二族) pp.24~25이강 공 전하는 이태왕 전하의 제2왕자, 궁녀 장씨의 소생이다. 이태왕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해 생모와 민간에 숨어 있다가 그 후 메이지26년(1893) 궁에 들어와 의화궁이라고 불렸다. 27년(1894) 청일전쟁 때 대사로 우리나라(일본)에 와서 평화 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