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일본의 "황실과 황족" 中 이강 공 (의친왕, 의화궁) 본문
#의친왕은 독립지사가 아니다. #한량을 지사로 역사 왜곡 #세종시의 역사왜곡
사카모토 다쓰노스케 (坂本辰之助)가 쓴 책 "황실 및 황족" 의 의친왕 부분이다. 1909년 초판 발간 이후 10년에 2판을 찍었다. 일본의 강점 후 새로 판을 내 조선왕공족을 추가했다. 여기에는 이왕(순종), 이태왕(고종) 등 왕공, 비빈의 작을 받은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坂本辰之助 編, 皇室及皇族(2版)(東京: 昭文堂, 1910.10.), (朝鮮王公二族) pp.24~25
이강 공 전하는 이태왕 전하의 제2왕자, 궁녀 장씨의 소생이다. 이태왕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해 생모와 민간에 숨어 있다가 그 후 메이지26년(1893) 궁에 들어와 의화궁이라고 불렸다. 27년(1894) 청일전쟁 때 대사로 우리나라(일본)에 와서 평화 후에는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에 유학하고 39년(1906) 귀국해 의친왕이라 불렸다. 매년 3만원의 세비를 받고 지금까지 육군부장의 영예로운 직위를 누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왕족의 생활을 하지 않아 아랫사람들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시며, 특히 오랫동안 일본에 계셔서 일본 생활에 익숙해지셨다. 경성에 계실 때에도 일본식 집에서 일본 옷을 입고 일본 음식을 드시며 생활하셨다.
전하의 비(妃)는 나이 스물다섯에서 스물여섯 정도로 둥근 얼굴에 품위 있는 용모를 가지신 현명한 분으로 항상 덕수궁에 머무르며 태왕 전하를 모시고 계신다고 한다. 왕자는 측실인 일본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한 명 있다.
의친왕이 귀국 후 일본을 그리 좋아했는지 몰랐다. 이 글을 보니, 의친왕이 "일본지조선"에 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아래 링크 참조) 왕자는 측실인 일본 여성에게 태어난 아들 한 명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1910년 출판물에서 천황가 왕공족에 대해 함부로 언급할 수는 없었을 터, 단지 허위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현재 의친왕의 자식으로 알려진 사람은 모두 28명으로 모두 어머니가 한국인인만큼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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