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
(삼국지) 신이 된 장수, 관우關羽 본문
*정사 삼국지 관우전의 번역이다. (배송지의 주석은 하늘색으로 표시했다.)
관우關羽의 자는 운장雲長이다. 본래 자는 장생長生으로 하동河東 해인解人이었으나 탁군涿郡으로 망명했다. 선주先主가 향리에서 무리를 모을 때 관우, 장비가 어모禦侮가 되었다. 선주가 평원상平原相이 되자 우羽・비飛는 별부사마別部司馬가 되어 부곡部曲을 나누어 통솔했다. 선주는 두 사람과 침상 하나를 함께 쓸 정도로 우애가 형제 같았다. 많은 무리를 이뤘어도 종일 시립했고 선주를 따라 다니며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촉기蜀記: 조공曹公(조조)이 유비劉備와 하비下邳에서 여포呂布를 포위하자 관우가 조공에게 여포가 진의록秦宜祿을 시켜 구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성을 점령하면) 그의 아내를 취하겠다고 청하자 공이 허락했다. 막 격파될 때가 되어 다시 누차 조공에게 청하자 조공이 그녀가 아름다울 것이라 여겨 먼저 사람을 보내 보고 오게 하더니 자신에게 붙들어두자 관우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는 위씨춘추魏氏春秋에서 언급한 것과 다르지 않다.] 선주가 서주자사徐州刺史 차주車冑를 습격해 죽인 뒤 관우에게 하비성下邳城을 지키며 태수太守의 일을 맡기고 [위서魏書는 관우에게 서주를 다스리게 했다고 했다.] 자신은 소패小沛로 돌아갔다.
關羽字雲長, 本字長生, 河東解人也. 亡命奔涿郡. 先主 於鄉里合徒衆, 而羽與張飛爲之禦侮. 先主 爲平原相, 以羽・飛爲別部司馬, 分統部曲. 先主 與二人寢則同牀, 恩若兄弟. 而稠人廣坐, 侍立終日, 隨先主周旋, 不避艱險. [蜀記曰: 曹公與劉備圍呂布於下邳, 關羽啟公, 布使秦宜祿行求救, 乞娶其妻, 公許之. 臨破, 又屢啟於公. 公疑其有異色, 先遣迎看, 因自留之, 羽心不自安. 此與魏氏春秋所說無異也.] 先主 之襲殺徐州刺史車冑, 使羽守下邳城, 行太守事, [魏書云: 以羽領徐州.] 而身還小沛.
건안建安5년 조공(曹公: 조조曹操)이 동쪽으로 정벌을 나서자 선주先主가 원소袁紹에게 달아났다. 조공이 관우를 잡아 돌아와 관우를 편장군偏將軍에 배수하고 심히 예우했다. 원소가 대장(군) 안량顔良을 보내 동군태수東郡太守 유연劉延을 백마白馬에서 공격하자 조공이 장요張遼와 관우를 선봉을 세워 공격했다. 관우가 멀리서 안량의 깃발[麾蓋]을 바라보고 수만은 무리를 뚫고 들어가 목을 베어 돌아오자 원소의 여러 장수들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고 결국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조공이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漢壽亭侯에 봉했다. 처음 조공이 관우의 사람됨을 칭찬하였으나 마음을 살펴보니 (자신의 휘하에) 남겠다는 뜻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장료에게 말했다. “경이 옛정으로 한 번 물어보시오” 그래서 장요가 관우에게 묻자 관우가 탄식하며 말했다. “조공이 나를 후히 대우해 주시는 건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나는 유장군(유비)의 은혜를 입어 함께 죽기로 맹세했기에 (유비를) 배신할 수 없소. 나는 끝까지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니 조공의 은혜에 보답했다 생각하면 떠날 것이오.” 장요가 관우의 말을 조공에게 보고하자 조공이 옳바르다고 여겼다. [부자傅子가 말했다.: 장료(遼)는 태조太祖에게 말하자니 태조가 관우를 죽일까 걱정되고 말하지 않으려니 군주를 섬기는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에 탄식하며 “공公은 군주이자 아비이나 관우는 형제일 뿐”이라며 태조에게 보고했다. 태조가 말하길 “군주를 섬기며 근본을 잊지 않으니 천하의 의로운 지사다. 언제쯤 떠나려 하는가?” 장료가 말했다. “관우는 공의 은혜를 입었으니 반드시 공에게 보답하고야 떠날 것입니다.”] 관우가 안량을 죽이자 조공은 그가 끝내 떠날 것을 알고 상사를 듬뿍주었다. 관우는 받은 것을 모두 봉해두고 사양하는 편지를 보낸 뒤 원소의 군대에 있는 선주에게로 달아났다. 좌우에서 추격하려 하자 조공이 말했다. “각자 주인이 있는 법이다. 쫓지 마라.” [신 배송지裴松之는 생각합니다. 조공은 관우가 남아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마음으로 그 뜻을 가상히 여겼고 떠나는데도 뒤쫓지 않아 그 의리를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이는 패왕의 방식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니 누가 이리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실로 조공의 미덕이라 하겠습니다.]
建安五年, 曹公東征, 先主奔袁紹. 曹公禽羽以歸, 拜爲偏將軍, 禮之甚厚. 紹遣大將(軍)顏良攻東郡太守劉延於白馬, 曹公使張遼及羽爲先鋒擊之. 羽望見良麾蓋, 策馬刺良於萬衆之中, 斬其首還, 紹諸將莫能當者, 遂解白馬圍. 曹公即表封羽爲漢壽亭侯. 初, 曹公壯羽爲人, 而察其心神無久留之意, 謂張遼曰: “卿試以情問之.” 既而遼以問羽, 羽歎曰: “吾極知曹公待我厚, 然吾受劉將軍厚恩, 誓以共死, 不可背之. 吾終不留, 吾要當立效以報曹公乃去.” 遼以羽言報曹公, 曹公義之. [傅子曰: 遼欲白太祖, 恐太祖殺羽, 不白, 非事君之道, 乃歎曰: “公, 君父也; 羽, 兄弟耳.”遂白之. 太祖曰: “事君不忘其本, 天下義士也. 度何時能去?” 遼曰: “羽受公恩, 必立效報公而後去也.”] 及羽殺顏良, 曹公知其必去, 重加賞賜. 羽盡封其所賜, 拜書告辭, 而奔先主於袁軍. 左右欲追之, 曹公曰: “彼各爲其主, 勿追也.” [臣松之以爲曹公知羽不留而心嘉其志, 去不遣追以成其義, 自非有王霸之度, 孰能至於此乎? 斯實曹公之休美.]
선주를 따라 유표劉表에게 갔다. 유표가 죽자 조공이 형주荊州를 평정했다. 선주가 번樊에서 강을 건너고 따로 관우를 보내 배 수백 척을 거느리고 강릉江陵에서 만나자고 했다. 조공이 당양當陽 장판長阪까지 추격하자 선주가 사선으로 한진漢津에 당도해 관우의 선박과 만나 함께 하구夏口로 갔다. [촉기蜀記: 애초 유비劉備가 허許에 있을 때, 조공曹公과 함께 사냥했다. 사냥하던 중 무리가 흩어지자 관우가 유비에게 조공을 죽이라했으나 유비가 따르지 않았다. 하구夏口에서 강가를 떠돌자 관우가 분노해 말했다. “지난 날 사냥하던 때 만일 관우의 말을 따랐더라면 오늘같은 곤란한 지경에 처하진 않았을 겁니다.” 유비가 말했다. “이때 또한 나라그때 나라를 위해 애석하게 생각했을 따름으로 만일 천도가 정의를 보우하면 이 또한 복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소.!” 신 배송지裴松之는 생각합니다. 유비가 훗날 동승董承 등과 결당, 모의하였으나 일이 새어나가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일 나라를 위해 애석하게 생각했다면 어찌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관우가 실제 권했고 유비가 따르지 않았다면 조공의 복심 친척이 실로 번성하여 무리를 이루었으니 충분히 조직하지 못했기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공이 비록 살해되었다해도 빠져나올 수 없었을 터이니 그저 계획으로 그치고 말터 어찌 애석하다 하겠습니까! 과거의 일을 아름다운 말로 빗댄 것일 뿐입니다.] 손권孫權이 병력을 보내 선주를 도와 조공을 막았다. 조공이 군대를 물려 돌아갔다. 선주가 강남 여러 군郡을 거두어 공로가 있는 자들에게 자리를 주었는데, 관우를 양양태수襄陽太守・탕구장군盪寇將軍으로 삼아 강북江北에 주둔하게 했다. 선주가 서쪽으로 익주를 정벌하고 관우를 동독형주사董督荊州事로 삼았다. 관우는 마초馬超가 내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옛부터 알고지냈던 사람이 아니었던 까닭에 관우가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마초란 사람이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 지 물었다. 제갈량은 관우가 윗 자리를 지키려는 뜻을 알고 대답했다. “맹기孟起(마초의 자)는 문무를 겸비하고 웅렬함이 남다른 일세의 영걸로 경포鯨布・팽월彭越과 같은 부류로 응당 익덕益德(장비張飛)과 앞을 다툴 터이나 아직 염髥의 다른 모든 사람을 능가할 정도는 못되오.” 관우는 아름다운 수염을 갖고 있어 제갈량은 그를 '염髥'이라고 불렀다. 관우는 서신으로 보고 크게 기뻐하며 빈객에게 보여주었다.
從先主就劉表. 表卒, 曹公定荊州, 先主 自樊將南渡江, 別遣羽乘船數百艘會江陵. 曹公追至當陽長阪, 先主 斜趣漢津, 適與羽船相值, 共至夏口. [蜀記曰: 初, 劉備在許, 與曹公共獵. 獵中, 衆散, 羽勸備殺公, 備不從. 及在夏口, 飄颻江渚, 羽怒曰: “往日獵中, 若從羽言, 可無今日之困.” 備曰: “是時亦爲國家惜之耳;若天道輔正, 安知此不爲福邪!” 臣松之以爲備後與董承等結謀, 但事泄不克諧耳, 若爲國家惜曹公, 其如此言何! 羽若果有此勸而備不肯從者, 將以曹公腹心親戚, 實繁有徒, 事不宿構, 非造次所行;曹雖可殺, 身必不免, 故以計而止, 何惜之有乎! 既往之事, 故託爲雅言耳.] 孫權遣兵佐先主拒曹公, 曹公引軍退歸. 先主 收江南諸郡, 乃封拜元勳, 以羽爲襄陽太守・盪寇將軍, 駐江北. 先主 西定益州, 拜羽董督荊州事. 羽聞馬超來降, 舊非故人, 羽書與諸葛亮, 問超人才可誰比類. 亮知羽護前, 乃答之曰: “孟起兼資文武, 雄烈過人, 一世之傑, 黥・彭之徒, 當與益德並驅爭先, 猶未及髯之絕倫逸羣也. ” 羽美鬚髯, 故亮謂之髯. 羽省書大悅, 以示賓客.
관우는 일찍이 화살에 맞아 왼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훗날 상처는 차츰 나았으나 매번 흐리고 비오는 날이면 늘상 통증에 시달렸다. 의원이 “화살촉에 독이 있어 독이 뼈속으로 들어가 팔을 가르고 째서 뼈를 긁어내 독을 제거해야만 이 상처를 완전히 없앨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바로 우가 팔을 펴서 의원에게 가르게 했다. 이때 관우는 장수들을 모아놓고 잔지를 벌였는데 팔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려 그릇에 가득 찼는데도 관우는 고기를 뜯고 술 마시며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羽嘗爲流矢所中, 貫其左臂, 後創雖愈, 每至陰雨, 骨常疼痛, 醫曰: “矢鏃有毒, 毒入于骨, 當破臂作創, 刮骨去毒, 然後此患乃除耳.” 羽便伸臂令醫劈之. 時羽適請諸將飲食相對, 臂血流離, 盈於盤器, 而羽割炙引酒, 言笑自若.
24년 선주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어 관우를 전장군前將軍, 가절월假節鉞에 배수했다. 이해 관우가 무리를 일끌고 번樊에서 조인曹仁을 공격했다. 조공이 우금于禁을 보내 조인을 지원했다. 가을 장마비가 많이 내려 한수漢水가 범람해 우금이 거느린 칠군七軍이 모두 죽었다. 우금이 관우에 항복했고 관우는 다시 장군 방덕龐悳을 참수했다. 양섬梁郟・육혼陸渾의 군도가 멀리서 관우의 사령[印號]을 받고 휘하[支黨]가 되니 관우의 위명이 전중국[華夏]을 진동했다. 조공이 (관우의) 예봉을 피해 허許에서 천도할 것을 논의하게 하자 사마선왕司馬宣王(사마의)・장제蔣濟가 관우가 뜻을 이루는 건 손권이 원하지 않을 게 뻔하다며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 그 뒤를 밟으면 허許에서 강남江南을 잘라 손권을 분봉하겠다고 하면 번의 포위는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라 했다. 조공이 이를 따랐다. 앞서 손권이 사자를 보내 아들의 배우자로 관우의 딸을 요구하자 관우가 사신에게 욕하며 혼인을 불허하여 손권이 대노했다. [전략典略: 관우가 번성에서 포위하자 손권이 사신을 보내 구조하겠다고 했으나 칙사가 빨리 갈 수 없었다. 다시 주부를 보내 먼저 관우에게 명을 전하자 관우가 더디다며 화를 냈다. 또한 우금 등을 직접 붙잡은 뒤 욕을 하며 “개자식, 감히, 번성을 빼앗았는데, 내 너는 못 멸망시킬까!” 손권이 이를 듣고 자신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거짓으로 글을 써 관우에게 사죄하며 허락하면 자신이 가겠다고 했다. 신 배송지는 생각합니다. 형荊과 오吳는 비록 겉으로는 화목했으나 안으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손권이 관우를 습격할 때도 군사를 숨겨두고 몰래 출발하게 했으니 여몽전呂蒙傳에서도 “정예를 나룻배에 숨겨두고 흰옷을 입혀 노젓게 하여 상인인 것처럼 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관우는 손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으니 손권도 관우에게 가겠다고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서로 원조하기로 했다면 무슨 이유로 규모와 행적을 숨겼겠습니까?] 또 남군태수南郡太守 미방麋芳이 강릉에 있고 장군 부사인傅士仁이 공안公安에 주둔했는데, 속으로 모두 관우가 자신들을 홀대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관우가 출전하고 미방과 부사인이 군수물자[軍資]를 공급했는데 서로 구하려들지 않자 관우가 “돌아가면 반드시 치죄하겠다”고 했다. 미방과 부사인은 두려워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마침) 손권이 미방과 부사인을 꾀어내자 미방과 부사인이 손권을 맞이했다. 조공이 서황徐晃을 보내 조인을 구원하자 [촉기蜀記: 관우와 서황은 서로 우정이 깊어 멀리서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삶은 말해도 군사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잠시 후 서황이 말에서 내려 명령했다. “관운장關雲長의 머리를 갖고 오는 자 금 천근을 상으로 줄 것이다.” 관우가 깜짝 놀라 서황에게 말했다. “형님, 말이 어찌 그리 독하오!” 서황이 말했다. “나랏일일 뿐이오.”] 관우는 이길 수 없었고 군대를 물렸다.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거하고 관우 무리의 처자를 모두 사로잡자 관우의 군대가 흩어졌다. 손권이 장수를 보내 관우를 역습하여 관우와 아들 관평關平을 임저臨沮에서 죽였다. [촉기蜀記: 손권이 장군을 보내 관우를 공격하여 관우와 관평 부자를 사로잡았다. 손권이 관우를 살려두고 유비, 조공과 대적하려 하자 좌우에서 말했다. “늑대의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후에 반드시 해가 될 것입니다. 조공이 그를 제거하지 않아 스스로 큰 환란을 맞아 도읍을 옮기려고까지 했으니 이제 어찌 살려두겠습니까!” 이에 참수했다. 신 배송지가 오서吳書를 보고 말씀드립니다. 손권이 장수 반장潘璋을 보내 관우의 도주로를 막고 관우를 죽였다는데 임저臨沮는 강릉에서 2~300리 떨어져 있으니 어찌 제때 죽이지 않고 그의 생사를 논의했겠습니까? 또 “손권이 관우를 살려 유비, 조조와 맞서려 했다”는데 이는 그럴리 없으니 잔꾀를 쓰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입니다. 오력吳歷에 이르길, 손권이 관우의 머리를 조공曹公에게 보내고 시신은 제후의 예로 장사지냈다고 한다.]
二十四年, 先主爲漢中王, 拜羽爲前將軍, 假節鉞. 是歲, 羽率衆攻曹仁於樊. 曹公遣于禁助仁. 秋, 大霖雨, 漢水汎溢, 禁所督七軍皆沒. 禁降羽, 羽又斬將軍龐悳. 梁郟・陸渾羣盜或遙受羽印號, 爲之支黨, 羽威震華夏. 曹公議徙許都以避其銳, 司馬宣王・蔣濟以爲關羽得志, 孫權必不願也. 可遣人勸權躡其後, 許割江南以封權, 則樊圍自解. 曹公從之. 先是, 權遣使爲子索羽女, 羽罵辱其使, 不許婚, 權大怒. [典略曰: 羽圍樊, 權遣使求助之, 敕使莫速進, 又遣主簿先致命於羽. 羽忿其淹遲, 又自已得于禁等, 乃罵曰: “狢子敢爾, 如使樊城拔, 吾不能滅汝邪!” 權聞之, 知其輕己, 僞手書以謝羽, 許以自往. 臣松之以爲荊・吳雖外睦, 而內相猜防, 故權之襲羽, 潛師密發. 按呂蒙傳云: “伏精兵於𦩷𦪇之中, 使白衣搖櫓, 作商賈服.” 以此言之, 羽不求助於權, 權必不語羽當往也. 若許相援助, 何故匿其形迹乎?] 又南郡太守麋芳在江陵, 將軍(傅)士仁屯公安, 素皆嫌羽(自)輕己. 〔自〕羽之出軍, 芳・仁供給軍資, 不悉相救. 羽言「還當治之」, 芳・仁咸懷懼不安. 於是權陰誘芳・仁, 芳・仁使人迎權. 而曹公遣徐晃救曹仁, [蜀記曰: 羽與晃宿相愛, 遙共語, 但說平生, 不及軍事. 須臾, 晃下馬宣令: “得關雲長頭, 賞金千斤.” 羽驚怖, 謂晃曰: “大兄, 是何言邪!” 晃曰: “此國之事耳.”] 羽不能克, 引軍退還. 權已據江陵, 盡虜羽士衆妻子, 羽軍遂散. 權遣將逆擊羽, 斬羽及子平于臨沮. [蜀記曰: 權遣將軍擊羽, 獲羽及子平. 權欲活羽以敵劉・曹, 左右曰: “狼子不可養, 後必爲害. 曹公不即除之, 自取大患, 乃議徙都. 今豈可生!” 乃斬之. 臣松之按吳書: 孫權遣將潘璋逆斷羽走路, 羽至即斬, 且臨沮去江陵二三百里, 豈容不時殺羽, 方議其生死乎? 又云 “權欲活羽以敵劉・曹”, 此之不然, 可以絕智者之口. 吳歷曰: 權送羽首於曹公, 以諸侯禮葬其屍骸.]
관우에게 장무후壯繆侯라는 시호를 내렸다. [촉기蜀記: 관우가 처음 출정해 번을 포위했을 때 돼지가 다리를 무는 꿈을 꿨다. 아들 관평에게 말하길, “내가 금년에 쇠할 터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강표전江表傳: 관우는 좌씨전左氏傳을 좋아하여 구절을 줄줄 외울 수 있었다.] 아들 흥興이 뒤를 이었다. 흥의 자는 안국安國으로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재목으로 여겨 각별히 생각했다. 약관弱冠에 시중侍中・중감군中監軍이 되었으나 몇 년 후 사망했다. 아들 통統이 뒤를 이었고 공주와 혼인해 관직이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까지 올랐다. 후사 없이 사망하여 흥의 서자 이彝가 봉을 물려받았다. [촉기蜀記: 방덕龐德의 아들 회會가 종회鍾會와 등애鄧艾를 따라 촉을 정벌했는 데, 촉을 격파한 뒤 관씨 집안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追諡羽曰壯繆侯. [蜀記曰: 羽初出軍圍樊, 夢豬嚙其足, 語子平曰: “吾今年衰矣, 然不得還!” 江表傳曰: 羽好左氏傳, 諷誦略皆上口.] 子興嗣. 興字安國, 少有令問, 丞相諸葛亮深器異之. 弱冠爲侍中・中監軍, 數歲卒. 子統嗣, 尙公主, 官至虎賁中郎將. 卒, 無子, 以興庶子彝續封. [蜀記曰: 龐德子會, 隨鍾・鄧伐蜀, 蜀破, 盡滅關氏家.]
三國志 蜀書 卷36 關張馬黃趙傳(關羽), pp.939~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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