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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유학 갔으면 공부 좀 하시오!(독립신문 1899.3.7.)

[지성 권학] 일본 외무대신이 대한에 주차한 일본공사에게 훈령을 내렸다. 한국 황족 의화군께서 명치28년(1895)부터 일본(본방)에 유학 한지 4년이 되었으나 학업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본 대신이 깊이 유감하는 바이다. 본 대신이 동궁同宮을 친히 뵈옵고 말씀 하기를, 일찍 본국에서 떠나신 후로 지금 까지 본방과 혹 미국에 유학하신지 4년이나 되었건만 학업을 성취하지 못하니 동궁은 물론 하고 대한제국 조정(한정韓廷)을 위해 개탄스러운 바, 앞으로는 한층 분발하여 열심히 수업할 뜻으로 권면하자, 동궁께서는 깊이 깨달아 았으니, 앞으로는 본 대신의 권고한 대로 학업에 힘쓰겠으니 도움을 부탁한다고 했다. 본 대신은 적당한 교사를 뽑아 항상 동궁의 곁에 있어 가르치게 하고 또 본 대신이 스스로 감독이 되어 유..

이왕가 사람들 2026.01.11

인터넷 환단고기 미디어 “기자 호소인”들의 특징

요즘은 웹페이지 하나 걸어놓고 언론 입네 하며 기자 행세를 하는 인간들이 천지에 넘친다. 그중에 환단고기를 경전으로 삼아 "민족사관"운운하는 종교 페이지들이 있다. 이들은 대개 환단고기를 맹신하는 종교의 한 역할을 하거나 그 종교 방송 등에 출연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환빠" 언급 이후 참다못한 역사학계가 나서 사이비 역사학(유사역사)을 규탄하고, 또 일부 학자들이 방송에 출현해 그 주장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사실 그전에 토론을 하자기에 토론에 응대했더니, 이들의 반응은 대개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 믿음이 맞아, 너네는 무조건 식민사학이야라는 자세로 임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조선일보 모 기자가 개인 자격으로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환단고기의 허실을 파헤쳤다. 이 와중에 조선일보 ..

환렐루야 2026.01.11

그는 왜 사기를 했나 – 왕족 이곤 씨의 생활기록(평화신문 1953. 6. 14.)

8.15.라는 역사적인 전환기에 부딪혀 궁궐을 쫓겨나와 생활고라는 무자비한 질곡 속에 허덕이고 있는 이왕 후예들의 신산한 몰락 과정을 말하는 호개의 자료로서 소위 구왕궁을 팔아먹었다는 왕족 이강공의 육남(이곤 34세) 씨의 오늘에 이른 생활 기록을 소개해 보자. 이곤(일명 이명길) 씨는 4253년(1920년) 11월 4일 이강공의 육남으로서 모친 김씨(이강공의 삼첩)의 몸에서 출생한 후 8세 시에 일본에 도항하여 동경 입회소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사립 입정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에서 중퇴하였다고 한다. 4271년(1938년) 8월에 귀국하여 시내 종로구 견지동85 사동궁에 거주 시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면 금곡리 윤항중 씨의 이녀인 윤옥순(당시23, 이곤 25)씨와 결혼하고 8.15. 해방 2년 후인 4..

이왕가 사람들 2026.01.10

인터넷에 서식하는 환단고기 광신도 환빠의 유형

그래도 우리 민족사 환단고기는 진실을 담고 있다고요? 그럼 지금부터 찾아보세요.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요?1. 입이 걸레: 욕부터 던지고 보는 부류다. 뇌가 썩어서 그 부패물이 입까지 내려와 흘러나오는 꼴이다. 이런 놈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인생 낭비이지만 그래도 인류애를 생각해 한 마디 해줄 수 있다. “뇌가 썩었네. 입도 더러워. 부모 부끄럽지 않냐?” 2. 나는 종교인: 천벌 운운하며 더러 여러 증산도 경전을 든다. 종교인과 싸우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다. 사이비 종교일수록 인간 이성을 거둬간다. 기독교도 사이비일수록 진화론에 적대적이다. 마찬가지다. 자기 종교 경전을 갖다가 역사로 인정해 달라니, 그건 기독교도들이 성경을 갖고 와 역사로 인정해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회나 법당, 회관 안..

환렐루야 2026.01.03

환단고기는 가짜다. - 송화강을 위한 구차한 변명

박종인 기자가 연속으로 환단고기를 비판하며 이덕일에게 토론을 청하자 이덕일은 변죽이나 울리는 영상 몇 개 던지더니 이제 "환단고기는 본질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슬그머니 퇴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박찬화, 오종홍 등 한문화타임즈,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등 그간 유사역사학을 대변해온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은 연일 "반론"이라며 글을 올리고 있다. 물론 아래서 봤듯, 맞지 않는 내용을 들고와 우기는 모양새다. 여기 또 하나의 반론이 등장했으니 이매림의 " 박종인의 ‘송화강 위서론’에 나타난 기자정신의 빈곤을 비판하며"(한문화타임즈, 25.12.29./ 아래 링크)다. 그럼 그의 반론을 보자. 그는 먼저 "‘지명 업데이트’는 인류 고전 전수의 보편적 문법이다"라고 말하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지명을 ‘현대화..

환렐루야 2026.01.03

박종인 기자가 신채호 선생께 사과를? 왜?

박종인 기자가 환단고기 검증을 시작하자 환단고기 신봉자들이 난리가 났다. 박종인 기자 유튜브에는, 1. 욕부터 하는 '놈'들, 2. 논점 흐리는 자들(다른 주제를 꺼낸다.) 3. AI 호소인들(AI가 아니라던데?하는 자들로 "ㅋ 뇌는 어디 두셨소?" 묻고 싶다.), 4. 정치충들 등 이른바 여러 종류의 소위 "환빠"들이 몰려들어 조회수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자 그 대표격인 이덕일 소장이 반박 영상을 올렸고, 여기에 박종인 기자가 토론을 요구하자 이덕일 소장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덕일 소장은 반박 영상을 올렸으나 유효타라 할 것이 거의 없었고, 여기에 박종인 기자가 다시 한 번 영상을 올리자 수세에 몰렸다. 이에 몇몇 지원자들이 흑기사인 양 대체 토론자로 나섰는데, 그중 한 명이 한문화타임즈의 박찬화 ..

환렐루야 2026.01.01

고려사절요의 이유 없는 등판(오종홍의 궤변)-김윤경 동광 글을 베낀 태백일사

환단고기 신봉자들에게 강력한 적이 나타난 모양이다. 박종인 기자가 일필휘지로 글과 방송을 내보내며 이덕일을 논파하자 여기저기서 난리도 아니다. “친일”, “식민”이라는 클리세는 물론이고 “조선일보”란 타이틀을 걸어 매도하기도 한다.(반박할 능력이 못되는 자들이 궁색할 때 주로 쓰는 수법이다.) 당장 내놓으라는 옥진총담(왕진총담인가?)은 침묵한 채 다른 문제로 시선을 돌리려는 상투적 수법도 자주 등장한다. 각중에 정면 돌파의 깃발을 들고 장황한 글로 반박을 하는 기사도 몇 개 보인다.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로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의 기사가 있다. 작성자 오종홍 기자 역시 박종인 기자에게 토론을 제의했다고 한다. 아래 그의 글 일부를 인용한다.박종인은 김윤경의 기고문에 나오는 ‘고려 광종 때’, ‘장유張儒’..

환렐루야 2026.01.01

"식민사학, 조선왕조도 '환빠' 라고 해야"라는 궤변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신문,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에서는 2025년 마지막날 "식민사학, 조선왕조도 '환빠'라고 해야"라는 기사를 올렸다. 요지는 조선왕조실록 등에 단군 관련 기사가 끊임없이 언급된다. 따라서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이 단군을 믿었다. 따라서 환단서기를 부정하는 역사학계(그들의 언어로는 식민사학)는 조선왕조도 환빠라고 해야 한다라는 논리다. 역사학계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해석한 바 있으며 일단락된 해석은 지금 국사 교과서에 반영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이비역사학자들은 단군과 환단고기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역사학은 조선시대 단군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다룬 바 있으며 이와 관련해 여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읽지 않고, 역사학이 연구를..

환렐루야 2025.12.31

옥진총담과 발해문자 실체는? - 박찬화 기자의 반론?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에게 토론을 요청했던 한문화타임즈의 박찬화 기자가 박종인 기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펼쳤다. 그럼 이하 그의 반론을 살펴보겠다. 1. '옥진총담'의 실체와 문헌적 가능성 논란이 된 부분은 태백일사의 가림다 문자 부분의 이맥의 부기다. 이맥은 “이태백전서 옥진총담에 이르기를,”이라고 했다. 여기에 박종인 기자는 이태백전서도, 옥진총담도 존재하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박찬화는 '옥진(玉塵)'은 “구슬처럼 맑은 티끌”이라는 뜻으로, 문장이나 시를 미화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라고 했다. 아니다. 구슬처럼 맑은 티끌, 그런 티끌이 있는가? 어불성설이다. "옥진"은 “옥에 티”란 뜻이다. 이처럼 한자 해석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잘못된 해석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옥진총담이 이태백의..

환렐루야 2025.12.30

반민특위, 일제협력자 이강공(전 의친왕)을 소환하다!

의친왕 추종자들은 의친왕이 해방 이후까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임정인사들이 귀국하자마자 의친왕을 찾아 예방했다는 거짓말까지 일삼는다. 만일 의친왕이 그 정도 지위에 있었다면 사동궁을 팔아치울 생각을 했을까? 해방이 되자 의친왕은 자신의 거처 사동궁이 적산으로 몰수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 전에 잽싸게 팔아치우려고 하다가 결국 사기 당한 것이다. 이희공의 양자로 간 이우공가는 비록 이우공이 해방 전 사망했지만 운현궁이란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이승만 정부에서도 운현궁은 사유재산으로 인정, 구황실재산과 구분해서 처리했다. 그러나 사동궁은 국가가 몰수하기도 전에 겁먹은 이강공이 팔아치운 탓에 개인의 재산으로 남지 못하고 파괴의 수순을 밟았다. 누차 말하지만 사동궁 파괴의 단..

이왕가 사람들 202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