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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단 독립선언서는 명의 도용이라 했던 의친왕 이강

의친왕은 왕공족으로 일제 협력자였다. 이미 국권피탈 전부터 품행이 온전치 못해 주변으로부터 지탄 받았다. 이미 미국 유학시절 부터 낭비벽이 심해 미국 은행에 피소된 바 있으며 짧은 일본 망명시절에조차 일본인 여성과 관계를 가져 자녀를 얻어올 정도로 색에도 탐닉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망명사건" 하나로 마치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황실인사"로 포장되고 있으나, 그 역시도 사실을 들여다 보면 착찹하기 짝이 없다. 대동단 독립선언서 역시 그 중 하나다. 대동단 독립선언서, 즉 11.28. 독립선언서는 전협, 최익환이 기초해 작성한 것으로 서명본이 아닌 등사본이다. 전협과 최익환은 구황실의 재건을 통해 독립을 꿈꾸었고, 이에 의친왕 망명을 기획한다. 그러나 망명은 의친왕이 자신을 부양할 충분한 자금은 있냐? 측..

이왕가 사람들 2025.11.23

나라재산 팔아먹는 지방자치

[단독]89억 땅 50억에 판 지자체… 매각 97%가 수의계약15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복합건물. 1, 2층 상가엔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3∼9층 레지던스는 인근 대기업 직원과 대학생들로 만실이었다. 한 커피숍 직원은 “평일엔 정신을 차릴 수 없n.news.naver.com지자체장 치적 쌓기와 동네 정치꾼들의 의원 놀음에 나라를 거지꼴로 만드는 지방자치, 계속 해야할까? 좋은 건 도둑놈들에게 빨대 꽂은 정당들 뿐인걸,

사건사고 2025.11.18

의친왕기념사업회 샌안토니오 강연회 후기

후기를 기대하실 분들이 있을 듯하여, 텍사스 샌안토니오 세인트 메리 대학 세종학당에서 주관한 이 강연은 10분 정도 늦게 시작했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라는 주제로 의친왕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이영주(윌리엄 이)가 진행했다. 세종학당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진행한 강의다 보니,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그래도 한국 역사를 강연하면서 유튜브로 조수미의 뮤비 "명성황후"OST를 틀어주는 건, 좀 당혹스러웠다. 한참 동안 허준호의 명연기를 볼 수 있었다. 근데, 일본인 낭인浪人을 Japanese Ninja로 표현한 것이 재밌었다. 레고 뮤비 닌자고가 생각났다. 낭인들에겐 기쁨이오, 닌자들에겐 모욕이지 않았을까 싶다. 고종, 순종, 의친왕이 나란히 서구식 군복을 입고 있는 AI 합성사진을 보여주며,..

이왕가 사람들 2025.11.15

줌으로도 한다는 의친왕 이야기(11.15. 오전 10-11시, 서울)

의친왕의 사적을 분식해 의친왕을 독립운동가처럼 미화하는 단체인 의친왕기념사업회가 이번에는 미국에서 강연회를 개최하는 모양이다. 조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려 하는 건, 나름 미풍양속일 수 있으나, 그것을 역사로, 집안 바깥으로 이야기하려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럼 그건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친왕기념사업회는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가장해 선전하고 있다. 1. 동명의 독립운동가 이강의 사적을 훔쳐 이강공의 사적을 꾸미는 데 사용하고, 1. 1909년 거창에 내려가 의병 운동을 지휘했다는 이야기를 꾸며내기 위해 친일파를 독립지사로 둔갑시키고,1. 전협, 최익환이 주도했던 망명 사건을 의친왕이 주도한 듯 했으며,1. 사동궁 파괴의 단초를 연 건 해방 후 적산으로 빼앗길까 두려워..

이왕가 사람들 2025.11.08

의친왕 후손, "황군의 분투에 감사" 친일파를 독립운동가로 만들다.

경남 하동 정온 고택에는 의친왕의 필적으로 전하는 "모와(某窩)"라는 현판이 있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1909년 의친왕이 이곳을 찾아 정태균과 의병을 양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거짓이며 역사 왜곡이다. 일단 1909년 해당 기간에 의친왕은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때 의친왕은 서울에서 산수 유람하며 기생들과 질펀하게 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정태균은 거창에서 일본 군경이 의병 세력을 소탕하는 데 조력하고 있었다. 의친왕기념사업회장 이준은 최근 전체 공개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정온고택은 친일파 프레임이 씌워졌고, 최부잣집은 군사정권에 재산이 빼앗기고, 황실은 일제와 초대정권에 의해 재산몰수는 물론, 되려 무능하고 부패해서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식민사관 프레임이 씌워졌습니다. 120년..

이왕가 사람들 2025.11.02

[기초단체폐지!] 서울특별시 강서구의회 양주와 욕설, 마사지

기초자치단체는 의회가 필요 없다.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우리는 잡초밭에 비싼 비료를 뿌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 구, 우리 군의 의원 이름 뽑을 때만 기억난다. 이들이 뭘하는지, 이들이 어떤 조례를 만드는 지 알고 있는 사람 있는가?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은 매년 "공무출장"이란 이름으로 삼삼오오 국외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라를 지정하고 여행사에 전권을 맡긴다. 회의? 회의할 능력이 되는 의원이 몇이나 있을까? 현수막 들고 다니며 기념촬영하는 것이 다다. 그 나라 모범사례 조사라며 결과보고서는 인터넷을 긁어서도 쓸 수 있는 걸 만든다. 그것도 공무원들 시켜서. 강서구의회... 아마 "운이 나빴다"할 것이다. 어차피 기초의회 다 이런 식이니깐. 강서구의회 의원들의 행태를 요약하면 이렇..

사건사고 2025.10.17

일제협력자 의친왕 이강과 친일화가 쓰루야마 김은호

의친왕이라는 희대의 바람둥이, 일제 협력자 왕공족을 마치 우리 사회가 존경해야 할 인물로 포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의친왕을 독립운동가로 만들기 위해 동시대의 여러 사람과 엮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퍼뜨린다. 그중에는 친일파로 불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한제국 말기에는 의병 토벌에 협력하고 1940년대에는 대동아공영을 외쳤던 정태균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의친왕이 그와 함께 의병을 양성했다는 희대의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그리고 의친왕의 파락호 삶을 지적하는 사람에게는 “뉴라이트”라는 혐의를 씌운다. 과연 누가 뉴라이트인가? 친일파 또는 일제 협력자를 독립운동가인 듯, 심지어는 동명의 진짜 독립운동가 사적까지 도둑질 해가며 조상 미화에 사용하는 것은 우리 역사를 진흙탕으로 만드..

이왕가 사람들 2025.09.27

“황실”이란 이름의 종교

뜻하지 못했던 장소에 인용되어 어처구니 없이 비판에 소비되고 있기에 남긴다. 그곳에서 “왜곡”, “우익” 운운하지 말고 무엇이 왜곡이고 문제인지 정확히 남겨주시길 바란다. 사실 왕당파들에게 뉴라이트니 우익이니 하는 소리 들으니 참 별로다. 자료를 읽을 능력도, 주장을 비판할 논리도 없는 사람들이 고종을 비하했다고 파르르하고, 또 비난하면 근거가 없다고 하거나 못 믿을, 일제에 오염된 자료라고 한다. 고종실록, 순종실록이 세계기록유산은 아니지만 세계기록유산 승정원일기와 별 차이 없다. 물론 찾아보지 않았을테니 알 턱이 있나. 그럼에도 전부 조작이란다. 왜? 고종을 비하해서. 그건 역사가 아니다. 믿음이지. 이런 논리라면야 이완용을 필두로, 을사오적, 정미칠적도 그리할 수 있다. 우리에 관한 사료는 다 일본..

이왕가 사람들 2025.09.06

가장 고종스러운 대통령 윤석열, 가장 윤석열스러운 임금 고종 - 고종 후손과 김건희

고종 후손 모씨가 김건희의 종묘 사적 유용을 비판했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김건희가 종묘를 제멋대로 사용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종묘는 왕=국가였던 시대 국가 제사가 열렸던 곳이자 문화유산이다. 정신 나간 왕비놀음 한 것이다. 하지만 고종 후손의 이야기도 비판을 면하긴 어렵다. "우리도 돈 내고 들어가는 데" 라든가, "대왕대비도 아니고", "후손에게 허락받았냐"라는 표현은 본인 스스로도 특권 의식을 갖고 종묘를 사묘처럼 생각하기에 나온 표현이다. 왕이 사라진 시대(심지어 나라를 빼앗김), 종묘는 주인은 시민이지 일개 가족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어조는 사고 측면에선 김건희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고종과 윤석열은 닮음꼴이란 사실이다. 윤석열은 고종의 환생이..

이왕가 사람들 2025.08.29

미국 공사 알렌과 의친왕의 달러빚

[일제강점기 일제의 자료만 신뢰하고 구술사는 허구로 취급한다는 비판이 있어 공지합니다. 아래 기사는 당당했다는 대한제국 공문서에 남은 기록입니다. 역사는 종교가 아닙니다. 정독하시고 읽어보고 문제가 있다면 증거로 논박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모 언론사에서 발행인 칼럼으로 "의친왕의 독립운동" 운운을 보았다. 그는 "그들(일제)의 공문서, 신문기사 따위를 근거로 의친왕을 평가하는 것은 결국 침략자의 시선에 종속된 역사 해석"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대한제국의 기록을 살펴본다. 종교적 세계관을 갖고 사실보다는 믿음으로 의친왕을 바라보고 신봉하는 이들에겐 그저 "단편적"이라 할테지만. 의친왕이 미국 유학 시절, 화려한 레이스의 셔츠를 구입해 뉴욕과 코니아일랜드로 놀러다니다가 결국 1902년 미국은행..

이왕가 사람들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