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2월, 대한제국 대황제 폐하 고종이 자식 문제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権助)를 불렀다. 곧 의화군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시점이었다. 이날의 대화내용은 하야시가 일본 외무성에 보낸 비밀 전보에 남아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고종이 #의친왕을 신뢰했고 #제국익문사를 맡겼다는 이들이 있지만 의친왕이 고종을 만난 것 몇 번 안되고 주연집 같은 고종의 문집에는 흔적조차 없다. 오죽하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을까. (이것도 "나조차 속았다"할 것인가?) 그럼 자식 이강을 보는 고종의 심정을 들여다보자.
이에 앞서 미리 말해두지만, 의친왕 숭모꾼들은 이 역시 일제에 의해 오염된 사료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본국에 보내는 전문"이며 또한 "비밀문서"다. 일단 본인들끼리 주고 받는 문서를 꾸밀 이유가 없으며, 게다가 의화궁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했다면 굳이 비밀 전문으로 보낼 이유가 없다. 먼저 전문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알현 목적: 귀국 예정인 의화궁의 처분
의화궁의 문제점
- 의화군, 대원군과 신정왕후의 입궐 및 책봉 지연 불만
- 방탕한 생활+무뢰배들과 어울림
- 을미사변 후 대원군 일가에 복수 기도, 그러나 음모 발각 - 일본 도피
- 미국유학 시 학업 일탈, 품행 방종 등
향후계획
- 본국 귀국 시 추태 및 황실 내 분쟁 우려.
- 3~4년간 일본 혹은 미국 유학 추진.
- 엄격한 감독자 배치
일본 → 이토 히로부미 또는 이노우에 가오루
미국 → (외부고문) 스티븐스에게 의뢰
고종 입장
- 의화궁은 일본 정부와 무관한 인물임.
- 일본 체류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판단됨.
전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동궁의 미국 체재 중의 행장은 매우 평판이 좋지 않았고, 또 전혀 학업에 종사하지도 않고 있다가 돌아왔다고 들었음. 그러므로 만약 이를 본국으로 귀래시켰다가는 대원군 가와의 사이에 다시 원한을 맺어 어떤 불상사를 야기할는지를 보장할 수 없음. 그렇게 되면 이 때문에 또 황실에 누를 끼쳐 추태를 부릴 염려가 없지 않음. 따라서 지금 3~4년 계속 일·미 양국 중 어느 나라든 본인이 원하는 곳을 선택시켜 유학시키는 것이 필요함. 그러나 이후는 엄중한 감독자를 부탁하여 동인의 학문은 물론 그 성행에도 간섭하여 감독하고 세상 사람과 같은 정도의 인물로 양성하고 싶은 희망임. 만약 일본에 유학할 뜻이라면 이토 후작(伊藤侯爵, 이토 히로부미) 혹은 이노우에 백작(井上伯爵, 이노우에 가오루)에게 감독을 의뢰하고자 함. 만약 미국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외부고문外部顧問 스티븐스에게 부탁하여 미국인 중 적당한 사람을 구하여 감독을 위촉하려고 함. 어쨌든 본인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하여 직접 전보를 쳐서 물어보아야겠지만 또한 일본 정부에서 본인의 희망을 문의할 것을 바란다는 말씀이 있으셨음."
이 앞의 이야기를 보면, 의화궁은 자신의 궁궐 출입을 막은 것은 민비가 아니라 대원군이라고 믿었다. 의화궁은 거기에 불만을 품고 일본 낭인, 한국 검객 등 각종 무뢰배들과 사귀며 대원군 일가를 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그러다 걸려 일본으로 도망치고 다시 미국유학도. 그런데 이제 돌아온다 하니 애비 고종의 걱정이 이만저만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상 사람과 같은 정도의 인물로 양성”대목에선 실소를 금할 길 없다. 그런데 이런 의친왕에게 고종이 제국익문사라는 조직을 맡겼다고? 제국익문사의 활동 자체가 소설이지만 의친왕이 간여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일종의 역사 빙자 사기극이다.
이강 공은 훗날 망명 사건 조서에서 이왕가에 대한 원망을 다시 쏟아냈다. 사료의 일관성이란 이런 것이다.
'이왕가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제국 융희황제 순종, 머리 잘리다 (0) | 2025.05.02 |
---|---|
엄비가 싫어한 두 사람, 의화궁과 이토 히로부미 (0) | 2025.04.13 |
‘경무대’란 명칭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0) | 2025.04.02 |
가짜 칙명으로 의병장 민긍호를 욕되게 하는, 의친왕 이강 (0) | 2025.03.29 |
전 의친왕 이강이 김규식을 찾아간 이야기 (1) | 2025.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