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제헌절, 조선 개국일 기원설의 진실

자불어 2025. 7. 1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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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이 단지 헌법을 공포한 날일 뿐 아니라 조선개국일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접했다. 이 주장 다수는 2000년대 이후 신문에 언급 되었으며, 사전으로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편찬한 세시풍속대사전에 언급되어 있다. 동 내용을 전제하면 다음과 같다. 

제헌절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헌법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1949년에 국경일로 정해졌다.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이어서, 과거 역사와의 연속성을 염두에 두고 1948년 7월 17일에 제헌헌법을 공포했다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세시풍속대사전 "제헌절" 가운데)

이 글의 집필자는 김민환(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부교수)으로 참고자료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0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과 본인의 석사 논문인  한국의 국가기념일 성립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를 제시했다. 석사논문에는 제헌절이 소략하게 언급되었으며 조선 건국일 기원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보인다.

5대 국경일의 하나로 7월 17일이다.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로서, 이 날과 맞추어 공포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헌절" 가운데)

해당 필자는 당시 총무처 총무국장이었던 김경제다. 그러나 본 내용의 근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입에서 입을 통해, 구전설화처럼 되풀이 되고 있을 뿐이다.

1. 조선 개국은 언제인가? 다음은 조선왕조실록 첫 문장이다.

(1392년 7월)十七日丙申, 太祖卽位于壽昌宮. 1392년 7월 17일 병신 태조가 수창궁에서 즉위했다.

1392년 7월 17일은 분명 조선 건국일이다. 그러나 이 7월 17일은 우리가 음력이라고 부르는 태양태음력(대통력)의 날짜다. 오늘날 양력과 다른 날이다.

2. 조선 개국의 양력 일자

그러면 조선개국의 양력 일자는 언제인가? 양력은 서구의 역법이다. 양력이 세계의 역법이 되기까지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 로마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존 로마 역법을 개정해 율리우스력을 제정했다. 오늘날 태양력과 다른 점은 2월이 28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역법은 기원전 45년부터 사용되어 로마의 확장과 함께 오랫동안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차자 누적되어 태양의 역법과 태양의 실제 위치와 차이가 나게 되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1582년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보정한 새 역법 체계를 제정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태양력, 그레고리력이다.

고종이 받아들인 태양력도 이 그리고리력으로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개정했다. 


조선개국일은 율리우스력으로 1392년 8월 5일이며, 그레고리력으로 1392년 8월 13일이다.

 

3. 제헌절의 제정

국회는 1948년 7월 12일 헌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7월 17일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이 서명하고 공포했다. 제헌절 이승만 대통령 때인 1949년 9월 21일 국회 제3차 회의 국경일에 대한 법률안 의결에 따라 국경일로 제정되었다. 단지 이날 헌법을 공포했기 때문이다. 동시기 어떤 기록도 조선왕조개국을 언급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4. 제헌절, 조선개국일 기원설이 허구인 이유


헌법을 제정한 날, 즉 제헌절은 양력으로 7월 17일이다. 조선 개국은 양력으로 8월 13일이다. 혹자는 조선건국일이 음력 7월 17일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1940년대 양력과 음력을 명확히 구분했던 사람들 사고로는 불가능한 가정이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양력과 음력을 구분해 사고했다. 같은 해인 1948년 11월 22일 서울에서는 한양 천도 기념식이 열렸다.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날은 1394년 10월 25일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11월 26(율리우스력 11월 18일)일이다. 4일 오차가 있긴 해도, 양력으로 변환해 기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와 비슷한 예로 충무공탄신일이 있다. 충무공탄신일은 매년 4월 28일이다. 양력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 음력 3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기념사업회도 처음에는 음력에 맞춰 기념식을 해왔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 양력으로 환산, 4월 28일로 고정했다. 만일 대한민국이 조선 개국일을 기념할 요량이었다면 응당 8월 13일을 기념했을 것이다. 민주공화국이 옛 왕국을 기념할 이유는 하등에도 없다. 심지어 헌법 제정 시 "조선"을 국호로 하자는 이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대한제국"의 계승이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다.


5. 음력 날짜를 환산 안하고 그대로 사용하는 곳

양음력 환산 안하고 그대로 날짜 적용하는 동네가 있긴 하다. 바로 일본이다. 메이지 정부가 세수가 부족해 태양력으로 개력한 이래 일본은 절일을 환산하지 않고 바로 적용했다. 우리가 단오로 부르는 당고는 양력 5월 5일로, 칠석, 즉 다치바나는 양력 7월 7일에 행사를 연다. 중국, 한국과 달리 유독 일본만 그리 한다. 

아래는 정인보 선생의 제헌절 노래다. 여기 노래에 고조선은 있어도 조선은 없다. 

비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예순 남은 일이 하늘뜻 그대로였다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옛길에 새걸음으로 발맞추리라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 


대한민국의 헌법을 공포한 날,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제헌절 = 조선개국일 기원설은 일종의 도시전설에 불과하다. 사전도 믿을 것이 못되는 게 참으로 개탄스럽다.
 

조선왕조실록(태조 개국 기사) / 제헌절 노래 제정 기사(연합신문 1950.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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