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조선통치비화 - 의친왕 탈출 사건의 진상(3)

자불어 2026. 3. 1. 00:14

이하 글은 <조선통치비화>(조선행정편찬총국, 1937)에 실린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던 시기 식민통치 각 방면에 있던 사람들의 회고담을 실은 것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다다시는 책을 출간하기 1년 전 2.26. 사건 시 살해 당한 까닭에 정무총감이었던 미즈로 렌타로가 중심이 되었다. 총 14장의 주제로 되어 있으며, 이강공 사건은 10장에 해당한다. 당시 이강공의 신문을 맡았던 지바 료(千葉 了)의 증언으로 신뢰성이 높다. 
일제협력자, 주색잡기로 평생을 일관했던 이강(전 의친왕) 옹호자들은 애당 초 일본인이 발간한 자료는 거짓으로 치부한다. 당시 일본 정계에서는 의친왕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도 공공연히 있었고, 특히 심문을 담당했던 지바 료는 이강을 의심하고 치밀하게 조사했다. 그럼 해당 원문을 몇 차례에 나누어 게재한다. 아래는 그 세 번째 편으로, 의친왕을 열차에 태우는 데 성공한 뒤 차례로 붙잡혔던 사건의 주모자들 이야기다. 의친왕 숭배자들은 마치 의친왕이 이 사건을 주도한 듯 말하지만, 의친왕은 조연, 실은 실패의 단초를 제공한 단순가담자에 불과했다. 왕공족 치고 그 정도 결심을 했다는 건 물론 대단하다 하겠다. 그러나 마치 독립운동가인양 포장해서는 곤란하다. 진짜 존경받아야 할 사람은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전협이지 의친왕이 아니다. 전협은 법정에서도 떳떳하게 본인이 주모자였음을 밝혔다. 결국 오랜 옥고(고문도 있었을 것이다.) 끝에 산 송장이 되어 가석방되자마자 숨을 거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글 신문은 빗 속에 초라하게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기사를 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의친왕은 없었다. 이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차례로 체포되며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부분이다.  


탈출 전후의 상황

그래서 저 자신이 전하의 저택을 직접 방문하여 탈출 전후의 상황을 조사하고, 아울러 앞으로 공저(公邸)의 경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여러 방책을 강구하는 한편, 불령선인(不逞鮮人)의 근거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김 경부가 저를 찾아와, 전하를 유괴한 일당이 아직도 창의문(彰義門) 밖의 어느 농가에 권총을 가지고 은밀히 모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이에 저는 경비 간부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협의하였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하기를, 불령선인을 체포하려면 새벽 미명에 향하지 않으면 거의 효과가 없으며, 지금 즉시 수사에 착수하는 것은 그들을 쫓아버리는 것과 같아 계책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눈앞에서 권총을 들고 모의에 빠져 있는 자들을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 기회에 일거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믿고 곧바로 경성 시내 여섯 개 경찰서에 전화하여 권총을 소지한 형사·순사를 소집하였습니다. 모여든 인원은 열일곱, 열여덟 명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들을 자동차 세 대에 나누어 태우고 김 경부를 안내자로 삼아 창의문 밖으로 출동시켰습니다.
자동차는 창의문 밖에 세워 두고, 열일곱, 열여덟 명의 형사들이 산길을 달음질쳐 그 농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중 우메다, 미나미 등 세 명의 형사가 선두에 서서 마침내 그 농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랜 기간 조선에서 근무한 경찰관들이 말한 대로, 십수 명의 형사·순사가 산길을 따라 진입하는 모습이 이미 총각(잡일꾼이란 뜻) 등의 사람들에 의해 밀회 중이던 농가에 전해진 듯하였고, 그때는 이미 불령선인들이 달아난 뒤였습니다. 다만 농가의 주인은 그 자리에 있었고, 또 총독부 소속 정운복(鄭雲復) 촉탁도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는 불령선인들에게 이용당한 자로서, 촉탁 본인에게는 조금도 악의가 없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 촉탁은 세 명의 형사에게 말하기를, 불령한 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으며, 다만 저쪽 산길로 지금 막 도망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가 그중 한 명이므로 곧바로 체포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에 세 명의 형사는 그 산을 달려 올라가 뒤에서 권총 세 자루를 겨누어 그 불령선인을 포위하였습니다. 그자는 운명이 다했다고 여겼는지, 산중턱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이 불령한 자야말로 이 음모에서 경호원 역할을 맡았던 동창률(董昌律)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정교한 권총 한 정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허리 둘레에는 수십 발의 탄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음모의 주모자

이에 동창률과 정운복을 경찰서로 동행하여 심문한 결과, 그들의 계획의 세부 사항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음모의 주모자는 전협(全協)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전협은 스스로를 전라남도의 부호 석동(錫東)의 대리인 이민하(李敏河)라고 사칭하며, 전하께 3만 원을 융통해 드리겠다고 내세워 정운복을 이용해 전하의 유괴를 계획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석동이라는 부호는 전혀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전협 자신이 아직 경성에 잠복해 있는 흔적이 있었으므로, 전협이 드나들 만한 곳에 형사들을 잠복시켜 두었습니다. 마침 불령선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들어왔기에 이를 체포하고, 그 정보에 따라 모리 경부가 직접 나가 용모를 확인한 결과, 그가 바로 전협 본인이었습니다. 그 후 이 일당 중 경성에 남아 있던 자들은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두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농가에서 도주한 나창헌(羅昌憲) 등은 상하이로 달아나 대동단(大同團)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여러 활동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전협(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