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조선통치비화 - 의친왕 탈출 사건의 진상(4)

자불어 2026. 3. 1. 13:53

이하 글은 <조선통치비화>(조선행정편찬총국, 1937)에 실린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던 시기 식민통치 각 방면에 있던 사람들의 회고담을 실은 것이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다다시는 책을 출간하기 1년 전 2.26. 사건 시 살해 당한 까닭에 정무총감이었던 미즈로 렌타로가 중심이 되었다. 총 14장의 주제로 되어 있으며, 이강공 사건은 10장에 해당한다. 당시 이강공의 신문을 맡았던 지바 료(千葉 了)의 증언으로 신뢰성이 높다. 
일제협력자, 주색잡기로 평생을 일관했던 이강(전 의친왕) 옹호자들은 애당 초 일본인이 발간한 자료는 거짓으로 치부한다. 당시 일본 정계에서는 의친왕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도 공공연히 있었고, 특히 심문을 담당했던 지바 료는 이강을 의심하고 치밀하게 조사했다. 그럼 해당 원문을 몇 차례에 나누어 게재한다. 아래는 그 네 번째 편으로, 경성으로 돌아온 이강의 이야기다. 오늘은 삼일절이니만큼 또 의친왕 숭배자들은 온갖 AI 합성 사진을 곁들여 독립선언서와 이강의 이야기를 늘어 놓을 것이다. 과연 실제 이강은 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아래를 보자. 


녹천정(綠泉亭)에서의 기거

한편 전하께 경성으로 돌아오시기를 청한 뒤에도, 사건의 경과에 대해 여쭙고 범죄로서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려를 기울였습니다. 또한 전하의 향후 거처에 관하여, 불령선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전하 본인에게 만일의 과오가 없도록 조처하는 데에도 상당한 고심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전하께서 귀환하신 뒤 머무르실 장소에 관하여 경무국장과 상의한 결과, 경무국장은 전하께서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시면 불령선인이 재차 접근할 위험이 있으니, 잠시 다른 장소에서 정양(靜養)하시게 하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마침 정무총감이 상경 중이어서 총감 관저가 비어 있으니, 그곳에 잠시 체류하시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사이토 총독을 직접 뵙고 여쭈었더니, 총독은 총독 관저 위쪽에 ‘녹천정(綠泉亭)’이라는 작은 별채가 있는데, 이는 이토 히로부미 공 시절 여러 차례 연회를 열었던 유명한 별저이기도 하며, 현재 비어 있으니 그곳에 전하께 체류하시게 하면 주변 경비를 매우 엄중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내정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무타 경시가 전하를 영접하여 경성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경성에서 하차하실 경우 불령선인들이 어떤 음모를 가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을 염려하여, 후지타 경부에게 밀명을 내려 용산으로 파견했습니다. 용산에서 하차하시도록 주선한 뒤 자동차에 함께 모시고 경성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총독 관저 정문 앞에 이르러, 후지타 경부가 곧바로 운전수에게 명령하여 자동차를 총독 관저 안으로 들여보내고, 곧바로 산 위의 녹천정에 머무르시게 하였습니다. 아울러 미리 배치해 둔 경위(警衛) 인원을 통해, 만일의 불령선인에 의한 유괴 등을 절대적으로 방지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긴급 조치는 전혀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던 듯하여, 신문기자들조차 사흘, 나흘 동안은 전하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하고 매우 혼란스러워하였던 것입니다.
 

이강공(李堈公)의 심경

그 후 불령선인들에 대한 검거도 일단 마무리되었으므로, 전하 본인에 대하여 당시의 사정을 직접 여쭈어야 한다는 문제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차례 협의한 끝에 제가 직접 그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모리라는 경부를 통역으로 동행하여 전하를 알현하고, 녹천정에서 전하로부터 전후 사정에 대하여 무려 일곱 시간에 걸쳐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전에 오랫동안 조선에서 근무한 동료들로부터 듣기로는, 전하께서는 매우 호방하고 권략(權略)에 능한 정치가적 면모를 지니신 분이어서, 미천한 관원에 불과한 저희가 이러한 일을 여쭙는다고 해도 쉽게 응하지 않으실 것이며, 대단한 신중함과 경계가 필요한 입장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특별히 각오한 바가 있었으므로, 전혀 개의치 않고 전하를 알현하여 일단 인사를 올린 뒤, 이번 재난에 대한 문안을 드림과 동시에 당시의 사정을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전하께서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당시의 사정을 조목조목 빠짐없이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저는 전하께 매우 동정할 만한 사정이 적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 취지를 총독 및 정무총감에게 일일이 보고했습니다.
전하의 말씀 가운데, 도쿄에 체류하기를 바라시는 심중이 엿보였으므로 이를 특히 정무총감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총독과 정무총감은 숙고 끝에 도쿄의 내각과 협의하고, 궁내성과도 협의하며, 경시청과도 연락하여 도쿄 이주 문제를 내정하였습니다. 그 후 제가 다시 전하를 알현하여 그 뜻을 전하였으나, 당시 이미 본저로 귀환하신 뒤였고, 전하의 심경이 상당히 달라지신 상태여서 도쿄 이주를 반드시 희망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이 일은 그대로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좌담회 참석자들 (조선통치비화 가운데)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