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가 사람들

제국익문사, 경성 임무 - 제국익문사비보장정

자불어 2026. 6. 10. 16:54

제국익문사비보장정 발견 이후, 전직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이태진을 필두로 그 추종자들은 마치 국권 회복을 위한 KCIA(고종의 CIA)로 제국익문사를 바라봤다. 그러나 서책 한 권에 불과할 뿐으로 실제 존재했는 지 여부는 여전히 미궁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장을 파서 들고 다니는 자도 있고, 제국익문사가 썼다는 암호라며 떠들고 다니는 자도 있으나, 모두 몰역사적인 행태에 불과하다.

제국익문사비보장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그러나 제국익문사비보장정을 보면, 존재여부는 둘째 치고, 과연 제국익문사가 근대 국가를 위한 조직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제국익문사비보장정 제5조는 서울에서의 임무다. (원문은 “京城”이라고 썼다.) 총 30조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를 현대어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1. 각부 부원 대관이 모임을 갖거나 이동하는 사항
1. 각군 영관과 장관이 모임을 갖거나 이동하는 사항
1. 승진, 임용하는 각 관인 친족 관련 및 감춘 행적 또는 거짓 정황 유무
1. 각 관인 가족 관련 사항
1. 국사범의 친속 동정
1. 국사범의 서신왕래유무
1. 자유민권을 몰래 제창하며 전제정치를 비방하고 정부의 득실을 평론하여 인심을 선동하는 자
1. 불평을 품은 자와 전직 관리가 국시를 돌아보지 않고 음모를 꾸미고 계략을 세우는 사항
1. 관인 혹 군인이 황실 정보, 군대 기밀, 정부 논의를 외국인과 밀통하는 자 유무
1. 국사범에게 은닉한 자금, 또는 외국인에게 정탐의 대가를 받고 본국의 각종 정보를 밀통하거나 정보를 넘기는 자 유무.
1. 익명의 문서나 소문을 만들어 인심을 선동하는 자 유무
1. 외국 공사와 영사가 모임을 갖거나 이동하는 일
1. 외국 공관의 기밀 사항
1. 외국 공관에 외국인이 왕래하는 사항
1. 외국 공관에 본국인이 왕래하는 사항
1. 외국 공관과 재한 외국인에게 고용된 본국인의 자격 및 행실 관련 사항
1. 일본수비대 장관과 경관이 이동 모임하는 사항
1. 일본정당과 낭객의 취합 이산 관련 사항
1. 천주교당과 예수학당(개신교) 신도의 취합 이산 사항
1. 공사립 각 학교의 학도의 동정 사항
1. 각 상사 및 회사의 이름을 걸고 사기 및 협잡하는 자 유무
1. 일본 상인 집단 중 주전 기계[私鑄機: 동전 제조기] 및 폭발물 등 금지 품목 밀매업자 유무
1. 일본인의 조선협회 및 그 지회의 동정
1. 정토종 교당 입회자 동정 및 증가율 관련 사항
1. 각 사찰의 무뢰배 출몰 및 일을 일으키는 자 유무
1. 인천 부산 일본철도회사의 실지정형
1. 철도 승객 중 수상자 유무
1. 한성신보사의 비밀 동정 유무
1. 치안에 방해되는 자 유무
1. 기타 일체 제실에 저촉되는 사항 유무

이상의 항목을 살펴보면 제국익문사 임무 대부분은 내국인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이용만 하고자 했던 고종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고종은 자신에 반대하는 신료들, 자신의 권위에 손상을 입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가차 없이 대했다. 정치적 격변이 있을 때마다 모든 책임을 신하들에게 돌렸고, 그때마다 신료들은 갈려 나갔다. (더러는 행정 조치나 형벌로, 더러는 민중들에게 던져 버리는 형식으로) 문무 관료들에 대한 사찰은 고종의 심성을 잘 보여준다. “자유민권을 몰래 제창하며 전제정치를 비방하고 정부의 득실을 평론하여 인심을 선동하는 자”라는 대목에서는, 보부상을 동원해 시민사회의 단초였던 만민공동회를 짓밟았던 암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본에 관한 사항도 있는데, 이는 군대, 정객과 낭인, 한성신보사, 정토종이다. 이는 민비 죽음의 트라우마를 발현한 것이다. 민비가 살해당한 뒤, 고종은 줄곧 두려움에 시달렸다. 늘 그는 일본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랬기에 그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강요할 때, 그는 끊임없이 회피기동을 반복했다. 뒤로는 의병을 장려하고 일본 앞에서는 의병 해산과 토벌에 힘썼다.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고도 일본이 항의하자 그들이 황제의 명령을 위조하고 가탁했다고 분노했다.(훗날 사형 언도는 덤이다.)
제국익문사비보장정은 어떤 탐욕스러운 군주의 자기 고백일 뿐이다. 국가유산청은 "사극"의 소재에 불과한 것을 역사인양 교육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제국익문사비보장정